왼쪽 발등이 골절된 지 한 달. 깁스한 발 상태를 확인하러 병원에 갔다. 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과 상당을 하는데 엑스레이를 보는 의사 선생님이 자꾸 고개를 꺄우둥거리셨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오. 이제 뼈는 조금씩 붙어가는 것 같은데 깁스를 언제 풀어야 하나 해서요."
말씀을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다. 아직 뼈는 다 붙지 않았다. 하지만 깁스를 오랫동안 하고 있으면 사용하지 않은 왼발의 근육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왼발과 오른발의 근육량 차이가 심해지면 재활을 하고 나서도 절뚝거리며 걷게 될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했다. 골절 진단받았을 때만큼이나. 절뚝절뚝 거리며 걷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됐다.
뼈를 붙일 것이냐 근육 감소를 막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잠시 고민하던 의사 선생님은 깁스를 풀자고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 깁스 바깥쪽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만지는데 '악' 소리가 났다. 한 달 동안 사용하지 않은 발가락뼈가 딱딱하게 들러붙은 것이라 했다. 깁스를 풀고 나서는 발가락과 발목을 서서히 돌려주면서 풀어줘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발등뼈가 다 붙지 않았기 때문에 발로 바닥을 딛는 것은 2주 후부터 하기로 했다. 앞으로 2주 동안은 손실된 왼쪽 다리 근육을 보완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집에 가서는 누워서나 의자에 앉아서 허벅지가 뻐근할 정도로 천천히 발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라는 의사 선생님. 솔직히 정형외과적으로는 지금까지는 아무 일 않고 놀았던 것이고, 이제부터 치료 시작이라는 솔직한 말씀도 덧붙이셨다.
깁스를 풀고 병원 밖을 나왔다. 깁스를 풀면 몸이 가벼울 것 같았는데 발바닥에 딱딱하게 굳은살이 박혀서 발바닥에만 미니 깁스를 한 것처럼 묵직한 기분이 들었다. '뼈를 다쳤는데 근육에 문제가 생기다니...' 사람의 신체는 참 합리적이고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 안 하는 근육은 줄여주고, 활발히 활동하는 근육은 더 발달시키고...
집에 돌아와서 두 발을 자세히 비교해봤다. 진짜 왼쪽 발과 오른쪽 발이 짝짝이 돼 있었다. 허벅지며 장딴지 근육량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무심한 나만 몰랐을 뿐.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발등 골절 재활'로 유튜브를 검색했다. 의사, 재활치료사, 골절 환자 등 많은 사람들이 재활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설명하고 있었다.
전에는 '수술은 본 치료, 재활은 후속치료'라고 생각했다. 배부르면 안 먹어도 되는 후식 같은 치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재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고 이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됐다. 재활은 통증과도 관련이 깊었다. 일부 골절 환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재활을 띄엄띄엄했다가 수술 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재활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며 재활 잘 받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깁스를 풀고 재활 관련 영상을 찾다 보니 몇 가지 딴생각이 들었다.
첫째, 사용하지 않는 것은 퇴화되고 자꾸 사용하는 것은 단련된다.
어찌 몸만 그럴까. 사람의 마음도. 자신이 키우고 싶은 능력도. 이를테면 글쓰기 같은. 건강해야지, 재활치료 잘 받아야지 하는 생각은 다리 근육을 키워주지 않는다. 누워서 뻐근해질정도로 다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 그 한 번의 동작이 중요하다. 글쓰기도 마차가지. 종이에 또는 핸드폰 메모장에 내 생각을 한 줄이라도 적어보는 그 행동이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둘째, 불균형은 '절뚝 인생'을 만든다.
왼발과 오른발 근육의 불균형은 몸을 절뚝거리게 한다. 그렇다면 능력이나 역량의 불균형은? 내 삶 자체를 절뚝거리게 할 수 있다. 왼쪽 다리 골절로 어쩔 수 없이 오른쪽 발로 온몸을 지탱했다. '어쩔 수 없이 아니면 알면서도 내 삶을 한쪽의 능력에만 의존해오지 않았을까', '지금 나는 삶을 절뚝거리지 않고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뒤를 한번 돌아본다.
셋째, 결국 실천이다.
유튜브에서 봤던 골절환자들도 재활이 중요하다는 말들을 이미 주변에서 많이 들어서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바쁘다는 핑계 그리고 귀찮아서 실천을 못했을 뿐. 인생의 정답들은 여기저기 널려있다. 특히 요즘 같은 비대면, 온라인 경제 시대에는 삶의 해법을 알려주는 수많은 영상들이 인터넷에 둥둥 떠다닌다. 물 반 고기반처럼. 욕심내지 않고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해야 내 것이 될 수 있다.
민폐인 줄 알면서 업로드한 새까맣고 복슬복슬한 짝짝이 왼발과 오른발 사진을 보며 다짐한다. '재활이 답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