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조선이 건국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이 되기 시작했다. 이성계라는 군 권력자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정치를 도와줄 지식인이 필요했는데 그가 바로 정도전이다. 이 정도전을 중심으로 유교 사상이 도입되었고 그는 유교 사상으로 조선 전체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유교 사상 이전 국가들
먼저 한반도를 지배한 국가들의 정치 형태를 살펴보면 조선 건국 전까지 유교 사상에 입각한 국가는 없었다.
고조선은 단군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었고 중도 포기한 호랑이는 도망쳤지만 곰은 끝까지 해내며 웅녀라는 여자가 된다. 그리고 그 웅녀와 결혼한 자가 북극성인 환인의 아들이자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단군왕검'의 이름은 단군은 원래 '탱글(하느님)'이란 단어에서 온 것이고 왕검은 왕이라는 뜻으로 제사장과 정치권력자를 한 사람이 모두 겸하는 제정일치 사회를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고조선의 왕은 즉 제사장(샤먼)이고 고조선은 샤머니즘에 사상에 입각한 국가였다.
삼한시대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도라는 장소가 제사장인 천군이 다스린 신성한 지역이었다. 제사장은 지금의 무당(샤먼) 같은 존재로 하늘과 사람은 연결시켜주는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이처럼 삼한은 제사장이 별도로 존재한 것으로 보아 고조선과는 달리 제정분리 사회로 여겨지는데 삼한은 샤머니즘 사상에 입각한 국가였다. 샤머니즘은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것으로 심지어 사람이 뱉는 말에도 언령이 있다고 믿었다.
'무당 무' 한자에서 보듯 무당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하늘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원혼이 가득한 원령(악령)이 괴롭히는 것이라 믿어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무당을 찾았다. 그리고 무당이 신을 부르면 영신(신을 환영함)-오신(신을 즐겁게 함)-송신(신을 보내드림)의 과정을 거쳤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며 이런 영적인 힘에 기반한 샤머니즘 사상이 약해지고 인도의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국가를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이때 받아들여진 불교는 고려 시대까지 약 10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한반도의 중심 사상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이런 불교 사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토테미즘적인 신화가 많이 탄생했다. 그 예로 신라의 '계림'이라는 지명을 들 수가 있는데 계림은 닭이 알을 낳은 신성한 곳이라는 의미로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와 연결된다. 그래서 신라인은 닭의 후예라고 생각했고 외국에서도 몽고인은 늑대의 후예, 로마인은 암늑대의 후예라는 믿음이 있던 것처럼 많은 국가들이 토테미즘 사상이 섞여 있었다.
삼국시대가 끝나고 고려로 넘어오는 기점부터 불교 사상은 더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된다. 왕이 곳 부처이고 부처가 왕이라고 할 정도로 불교가 강성해졌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부처를 자청하고 마진의 왕이 된 사람이 바로 '궁예'이다. 하지만 궁예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폭군 정치를 일삼았고 살인을 저질렀으며 심한 불교계의 반발을 샀다. 궁예의 독재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후삼국의 전쟁도 끊이질 않아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이런 상황을 궁예의 부하 장군이었던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며 고려를 건국하게 된다. 왕건은 불교를 통한 국가 통치를 이어가며 좋은 정치를 펼쳤으나 공민왕 말기에 고려는 공민왕의 폐단으로 인해 패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유교 사상의 도입
이런 고려를 더 이상 눈을 뜨고 보지 못한 고려 장군 이성계는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을 통해 정권을 잡고 조선을 건국한다. 고려의 장군인 이성계는 고려의 색깔인 불교를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중국의 유교를 받아들인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유교의 시작점이다. 당시 조선은 '숭유억불(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함)'을 천명하며 음양오행 기반의 철저한 유교 사회로의 변환에 집중했다. 무관이었던 이성계는 정치 경험이 약해 정도전이 정치 구조를 잡아갔는데 유교 사상은 정도전을 주도로 이뤄진 것이었다.
정도전은 조선을 건국하며 유교를 조선의 모든 분야에 도배를 하기 시작한다. 그 도배가 얼마나 심한지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유교에서 비롯된 습관과 문화가 매우 많이 남아있다. 물론 유교가 가져온 장점도 있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유교가 조선을 망쳐놨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이제 다음 편부터 우리가 몰랐던, 지금도 하고 있는 유교 습관에 대해 얘기할 것인데 사실 내 주관적 관점에서는 좋다고 느낀 유교적 요소는 없다. 내가 공부한 유교는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고, 허례허식에 치중한 국민의 삶에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택하면서 다양한 종교를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500년을 지배한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오며 유교는 함께 넘어오게 되었고 여전히 우리 삶 이곳저곳에서 유교의 스멜이 폴폴 넘친다. 유교의 뿌리이자 시작인 중국은 공산주의를 택하면서 공산주의 이외의 사상은 받아들이지 않아 오히려 유교 사상이 우리보다 약해졌다. 이게 유교에서 온 거였어?라고 놀랄 정도로 정도전이 도배한 유교는 여전히 남아있는 게 많으니 기대하시라. 앞으로 펼쳐질 유교 판도라 상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