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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울림 Jul 20. 2020

#.2

주간 <임울림>

창밖으로 비가 쏟아졌다. 아침의 일이다. 나는 빗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켰다. 응어리진 지난 한 주를 깨끗이 쓸어내는 것만 같았다.


앞서 나는 과도(?)한 업무 압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내게 업무 압박이란 양적 측면보다는 질적 측면이 더 크다. 시스템의 부재로부터 오는 동기 상실과 뻔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자신을 보고서 좌절했다.

그러다가 목요일엔 직장에 오래 머문 선배에게 술 한 잔 사달라고 했다. 선배는 '기계처럼 쓰는' 것에도 경지가 있다고 말했다. 기계처럼 먼저 쓸 줄 알아야 더한 것들도 써낼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동안 수십 해를 거듭하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가,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가기 위해 탄탄한 기본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쓰는 사람의 역량과 이를 편집하는 사람의 역량이 다르다는 점도 들으면서, 글은 홀로 쓰는 것이라며 자만에 빠져있는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었음에도 반성하게 되면서 머릿속에 그린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불평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줄인 셈이다.


주말엔 본가에 갔다. 문을 열고 맞이해주는 울엄니가 있었다. 티는 안 냈지만, 엄니가 돌아볼 때 나는 울대로 쓸쓸한 마음을 삼켰다. 울엄니 많이 늙었다. 학창 시절 고생시켰던 그때가 기억 상자 속에서 참 많이 바래져 있다.

사회생활한다고 자꾸 못 보는 것들이 늘어난다는 게, 풍경보다 속도를 염두하는 게 마음을 참 무겁게 했다.

말수가 주는 우리 엄니, 두 손 가득 어린 나와 동생을 이끌고 온 우리 엄니. 이제 손이 덤덤하고 가벼워지는 것 같다.


일요일, 회색 빛이 스미는 아침에 눈꺼풀을 가볍게 떨어뜨리고 한동안 빗소리를 들었다. 나, 삶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쥐려고 하는 건 아닌지. 풍경에도 여백을 남겨둬야 하는 것을, 무엇을 그리도 가득 채우려 했는지. 빗소리에 다 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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