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린 Feb 06. 2022

모나리자처럼 나이스 하게

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미소란,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음, 또는 그런 웃음(네이버 어학사전 中.)을 뜻한다. 희로애락이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느껴지는 게 감정이 있다는 점이다. 즐거울 때는 웃고 슬플 때는 눈물 흘리고 노여울 때는 분노하고 기쁠 때는 흐뭇하고 흡족해하면 된다. 사람이 감정 없이 산다면 그건 기계, 로봇 아닐까. 허나 그것도 옛말이 되어 가는가. 요즘엔 AI로 로봇도 감정을 읽고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지, 아마. 원래부터 기계인지라 감정이 없는 것과 감정이 있는데도 뒤로 감춘 채 사는 사람은 뭐가 다를까. 


표정 없이, 감정의 변화를 들키지 않게 꽁꽁 감춰두는, 아무런 감정도 얼굴에 드러나 있지 않은 얼굴 표정의 사람들은 가슴 안에 무언가를 느끼고 안고 살아갈까. 무엇이 그리도 겹겹이 감추어 둔 채 살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정말 표정이 없나 싶다가도 희미하게 스쳐가는 입 꼬리 양 옆 엷게 번지다 후다닥 사라지는 찰나에 

그 사람의 생기를 잠깐이나마 느낀다. 


들키지 않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좋음도 싫음도 티 내지 말고 옳다 그르다 꺼내지 말고. 오직 무표정만 지녀야 안전하다. 웃는 표정이 때론 화살이 되어 돌아오고 우는 눈물이 동정이 되고 연민이 된다. 울면 지는 게임 같은 관계. 서로가 더 잘났다 우세하다 하지만 혹 너무 튀면 잔디 깎이듯 깎이는 평균의 공간. 너무 튀지도 말고 너무 못나지도 말고 그냥 그 정도. 드러나지 않게 혹은 없어 보이지 않게 들키지 마라. 나의 약점을 나의 미소를. 들키는 순간 안주거리가 되고 도마 위에 오르며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표정을, 나다운 부분을 오픈할 때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보여줘야 안전하다. 사람들의 입방아란 개인사 

위에 쌓인다. 다양한 삶이기에 보이는 자율성과 개인성은 중요치 않다. 모인 순간 눈에 보였던 모든 것들이 

이야깃거리 재료가 되어 타닥타닥 불 타오르듯 타게 한다. 불에 데이지 않으려면 들키지 않게 표정은 감춰 

둬야 한다. 내가 아프지 않도록 겹겹이 가면을 써야 안전하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때론 가면을 쓰지 못해 감추지 못한다. 그럴 땐 모나리자처럼 나이스 하게 입 꼬리를 올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뒤 탈이 없다. 마음은 들키지 않았으니 다행인 거 아닌가. 나의 의견이 필요한 게 아니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이리도 까이고 저리도 까이고 이 집은 이렇다더라, 저 집은 저렇다더라 입방아에 오르는 건 예사(例事). 


무수한 언어 틈바구니에 깔리기 전 거리를 둬야 안전하다. 그럴 싸 하게 감췄다 한들 풀이 죽은 나의 진심을 본다. 달래주는 건 나의 몫. 여기에서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건 개인성은 뒤로 감춘 채 계급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웃은 듯 머금은 듯, 속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 뒤에 진심은 꺼내 보이지 

말아야 안전하다. 





계급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 정도면, 아내의 자세가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