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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Feb 13. 2022

눈앞에 댓글이 달린다.

군인, 군악대장 가족입니다만

색색의 꽃들이 테마별로 가꾸어진 공원을 산책하다 문득. 분홍 꽃들 사이에 홀로 유독 색이 짙은 꽃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소곤댔다.

“어머, 얘. 너 거기 왜 있니.”     

온통 분홍색 꽃들 사이에서 저 혼자만 다른 색을 지녀 유독 눈에 띈다. 한동안 머물며 가만히 들여다봤다.

어쩌다 저기 한가운데 들어갔을까. 모두가 하나의 이라 어우러지는데 진한 핑크 꽃은 유독 두드러진다. 그저  송이 꽃으로 가볍게 보고 지나쳤을  한데 반갑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감정이 불러일으켜진다는   순간, 나에게 공명된다는 말이다. 한가운데 피워진  꽃은  그룹에서 남편이나  모습 같다.           


남편 병과(군인으로서의 전공)는 사단 내에서 한 자리이고 전국 군 지역에 한 자리씩이다. 각각의 부대 분위기가 어떠냐에 따라 사람들의 대우는 천차만별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놀고먹는, 남들 땀으로 일할 때 악기 연습한다고 띵까띵까 하는, 나랏돈 받으면서 일 안 하는 군악대 소리를 듣는가 하면, 어느 지역에서는 능력 있는, 부대의 얼굴, 군 가족과 지역을 화합의 장으로 어우러지게 하는, 유일무이해 대외적으로 값진 일을 하는 군악대가 된다. 마치 온천에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 가는 것과 같다. 군인은 군인인데 군인 아닌 듯 군인인 군악대장이다. 마치 대중 한가운데 저 꽃처럼. 보편성 안에서 특수성을 가진 직업.

책. HISTORY 음악만들기와 오케스트라의 역사 중.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행사(연주) 때마다 눈에 띈다. 행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연주가 빈번해질수록 남편은

내외부로 알려진다. 행사  타인은 남편 알아보는데 남편 인사를 건넨 상대방이 누군지 쉬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 종종 있다. 타인은 나를 아는데 나는 타인을  모른다는 .  사람은 나를 아는데 나는  사람을 모른다는 . 흡사 유리벽이다. 보는 눈이 많아진다는  그만큼 말도 많아진다는 의미이고 자연스레 가족에게도 연결점이 된다.     


때론‘가족이 무슨 상관일까’ 싶을 때도 있고, ‘설마 누가 관심 있게 보겠어.’할 때도 있다. ‘타인이 그러든 말든 나와 아이들에게 집중해야지’ 싶다가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인사차 안부를 건넬 때면 나도 모르게 흠칫하게 된다.

“어제 어디 가시는 거 봤어요.”

“무슨 일 있으셨다면서요. 사실이에요?”

“군악대장님이 아이들과 잘 놀아 주시더라고요”

“00 공원에서 나들이하시는 거 봤어요.”

“00 마트에서 00 사셨죠. 저도 예전에 구입해봤는데.......”

“그때 입었던 옷 어디 거예요?”

“저번 그 일은 괜찮아요?”     


이건 흡사 우리 가족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어떤 지 바로 눈앞에서 댓글이 달리는 모양새다. 반가움과 관심이겠지만 보는 눈이 한 둘이 아니라는 가정은 그야말로 새장 안의 새, 유리벽 안 모든 게 보이는 모양새다.

      


가족으로서 나는 무난한 듯 튀고, 자연스레 도드라져 보이지만 튀지 말아야 하는 입장이 된다. 행동, 말투,

외출의 유무, 활동의 범위, 아이들의 교육 정도, 가정 내 분위기, 감정의 상태, 쇼핑 스타일, 동작의 반경 등. 집 안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소문날 기세다. 물론 소문이 날 수도 있다. 다만, ‘군악대장 네는 이렇다’라는 진위여부가 불명확한 점은 대략 난감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계급문화와 특유의 환경이 내포되어 있는 군인가족 지점에서 

개인성이 강한 내가 

더불어 살아가며 성장하는 일상을 담습니다.

보편성과 개인성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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