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비타민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음악과 사람이었다. 음악은 이유 없이 무작정 좋았다. 취향일 수도 있지만, 잘하고 싶어서 계속 머무르고 싶은 범주가 바로 음악이었다. 또,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었다. 사람이 그 사람다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서사, 환경, 기질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기적인 면이 있기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이 필수였다. 그리고 철학을 통해서는 인간다움이라는 것을 그려볼 수 있었다. 보다 인간답게 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가능한지 다시 탐구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의 중심에는 음악, 심리학, 철학이 있어야 했다. 때로는 환경과 부딪히거나, 사람들로 인해 지치기도 했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어제보다 나은 나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나를 살게 했다.
직업이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은 곧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과정이라 본다. 자신의 쓸모있음을 역량에서 찾고, 그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한다면 그 삶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나만을 위한 직업이 아니라, 세상에 도움이 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보람되고 즐거운 일.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정의다.
예전에 거대한 바다에서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부부를 본 적이 있다. 한 인터뷰어가 물었다.
“쓰레기를 줍는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하시나요?”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적어도 우리가 지나온 길은 깨끗해질 수 있으니까요.”
바로 그거다. 세상을 다 바꾸지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일을, 단 한 점이라도 찍는 것. 온 세상이 알지 못하더라도, 나만은 아는 보람된 일.
AI 시대에 들어서며 직업의 정의 역시 새롭게 내려야 하지 않을까. 사회학적으로 직업은 사회 속에서 개인이 맡은 역할과 지위로 이해된다. 예컨대 ‘의사’라는 직업은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 사회적 신뢰, 권위, 책임이 함께 주어지는 역할이다. 우리는 흔히 직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보지만, 동시에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정체성의 일부를 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직업은 자아실현의 도구이자, 좋아하는 일과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삶의 만족을 높이고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한 활동이 될 수 있다.
철학적으로 직업은 “삶의 의미를 구현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을 “탁월성을 실현하는 활동”이라 했고, 막스 베버는 직업을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소명(Beruf)’으로 보았다. 결국 직업은 단순한 수입원이 아니라 자기 존재와 가치가 실현되는 장(場)이다. 직업은 먹고 사는 범주를 넘어, 자신의 능력과 열망을 사회적 필요와 연결시키는 통로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