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서울로 출근했습니다.

Vouloir, c'est pouvoir

by 김오뚝
Vouloir, c'est pouvoir
원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6년 처음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을 때 마치 다른 차원으로 넘어온 듯 한 기분마저 들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태국, 홍콩 5박 6일 패키지여행 외에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과 쭈욱 같이 살았던 탓에 자취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무려 파리에 1년이나 가게 되다니.


요즘은 워낙 실시간으로 (이런 얘기를 하니 화석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사실이다) 프랑스어 매체며 드라마도 볼 수 있지만 내가 파리에 갔던 때는 인터넷은커녕 전자사전도 없어서 벽돌 같은 종이사전을 들고 다니던 때였다. 그것도 불한, 한불 따로따로. 인기 없는 언어라 이렇게 전자사전도 안 나오는 건가 내심 서러웠는데 요새 네이버 사전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프랑스어를 보면 괜스레 뿌듯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아무튼 청해 수업에서 듣던 녹음된 불어가 아니라,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프랑스어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 또 내가 배운 언어를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신이 났다. 비록 수업을 다 따라가지 못해 녹음기로 다시 재생해서 필기하고 했지만 서도 정말이지 '살아있는'언어가 이거구나! 하는 게 느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도 느는 게 느껴지니까 너무 재미있었다.

그렇게 꿈같은 1년을 지내고, 졸업을 1학기 앞둔 4학년으로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이제 돌아가면 한 학기가 남아있는데 뭘 하면 좋을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센 강변 카페에서 튈르리 공원에서 무작정 걸어 다니며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가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학교는 국립 동양 언어문화대학(INALCO)이라는 곳이었는데 동양어 전문대학이라 그런지 그 시절에도 한국어학과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강사 선생님으로 계시는 K 선생님에게 찾아가 면담도 하고, 과연 내 진로가 어떻게 되면 좋을지 이리저리 방법을 찾으려고 했었다.


프랑스어를 살리고 싶은데 K 선생님처럼 통번역대학원에도 가고 싶고, 기자도 되고 싶고, 쇼호스트도 되고 싶고, 갑자기 뮤지컬 배우도 되고 싶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 늘어놓는 나에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더랬다. 뮤지컬 배우는 이제 와서 갑자기 좀 아닌 것 같다고 하긴 하셨는데, 23살이면 뭐든지 가능했던 나이인데 아직도 다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마음에 좀 남는다.


어찌 되었든 간에 K 선생님의 말처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되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 외에는 '아무도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이라는 다소 싱거운 결론을 내고 한국에 돌아온 터였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나는 무조건 다시 프랑스에 돌아가고 싶었다.

못 다 찾은 답이 왠지 프랑스에는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대학원을 가고 싶진 않았고 프랑스어를 제대로 써먹으면서 일도 하면서 경력도 쌓고 싶었다. 그게 뭘까 또 이리저리 고민했다. 그러던 찰나 중국에 인턴을 가있는 동아리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중국어과였는데 한국무역협회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청년무역인력양성' (이하 청무)의 일원으로 상하이에 있는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지금은 명칭이 '글로벌 무역 인턴십'으로 변경되고 파견 국가에서도 프랑스나 벨기에가 빠져있고 프로그램도 그때랑은 차이가 좀 있는 듯하다.


지금이나 당시나 차이가 없는 건, 해외에 있는 한국 지사들에 한국인 인턴을 보내서 말 그대로 미래의 무역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인데, 내 친구도 그 프로그램으로 상하이에서 6개월 동안 일하고 있었다. 물론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체재비와 월급도 받고 말이다.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1년에 2번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뒤로 다음 공고가 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매일 파리에 가있는 나를 꿈꿨다. 물론 프로그램에 선발도 되어야 했지만, 항공비 같은 부대비용은 연수생 부담이었기 때문에 통번역 알바를 하면서 참가비를 모았다. 그렇게 부지런히 면접도 준비하고 운 좋게 50명 중 프랑스어권 4명 중에 한 명으로 선발이 되었다.

물론 2개월간 국내 교육시간에 무역 기초 및 실무 전반에 걸쳐 교육을 받는 연수기간을 지나고 성적에 따라, 국가 및 기업에 배정되는 거라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각종 수업에 참여하는 게 버겁기도 했지만 그래도 목표가 정해져 있었으니 너무 즐거웠다. 프랑스어권에는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 이렇게 2개의 국가가 있었고, 프랑스어 구사자를 우대하긴 하지만 연수생이 파견국가를 정할 수 없다는 규정에 파견지가 정해질 때까지 초조한 마음반 설레는 마음반으로 기다렸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매일 파리에 가있는 꿈을 꿨는데 또다시 운이 좋게도 파리 파견 4인에 포함되어 프랑스로 향한다.


공항에서 파리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면 내렸던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아-파리에 다시왔구나 실감나던 순간



그렇게, 다시 밟은 파리 땅은 참 좋았다.

1학기를 그대로 휴학해두고 학생이지만 학생이 아닌 인턴의 신분으로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출근'이라는 것을 경험해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이 났다.


내가 파견되었던 기업은 L그룹 계열사(지금은 나와있다고 들었다) 패션 회사 지사였다. 파견 전에 이전에 있었던 선배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일종의 인수인계 자료를 받았었다. 그리고 패션회사인데 어찌 된 일인지 패션일보다는 식품일도 한다고 들었다. 일은 가서 배워서 하면 되지 뭐 어때 패션이든 식품이건 파리에서 일하는데!


지사장님은 30대 중반의 젊은 남자 과장님이셨고, 현지 채용으로 들어온 남자 사원 분 하나 그리고 프랑스 직원 총 3명이 지사 멤버였다. 해당 지사에는 나와 함께 파견을 온 다른 언니 한 명 이렇게 둘이 인턴으로 배정되었다. 사무실은 샹젤리제 거리 한편에 큰 대로변에 있었는데, 노트북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릴 때면 나중에 내가 여기서 일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감히 짐작해 보기도 했었다.


프랑스 직원이 있긴 했지만, 워낙 식도락인 지사장님 덕에 점심시간에는 프랑스 식당이며 한국식당이며 학생 신분에는 비싸서 가보지 못했던 곳에서 식사도 해보고 파리지엥들처럼 샌드위치로 점심도 먹어보고

"00 패션 Paris, Bonjour"하는 전화 인사도 실컷 해봤다.




인턴 신분이었지만,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지사장님 덕분에 영국, 이탈리아에 무려' 출장'도 가보고 마켓 리서치, 향수 브랜드 미팅, 박람회 참가 등 6개월이란 시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보냈다.

물론 파리 지사라는 특징상 패션위크나 본사 임원들의 방문 시 의전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중에 하나였는데, 미리 동선 파악하기, 식사 장소 알아보기, 호텔 예약하기 등등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나하나 도움이 되지 않은 것들이 없다. 그것도 모든 것을 다 한국 같은 분위기에서 프랑스어로 배웠으니 더 남달랐던 것 같다. 나중에 처음 회사에 취직했을 때도 그때 배웠던 것들, 익혔던 것들 어깨 너머로 듣고 따라 했던 것들이 어느새 내 것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어쨌든 경험은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해외에서 대학생활도 하시고 영어가 워낙 네이티브 급이셨던 지사장님은 가끔 영어로도 일을 시키셨다. 불어는 거의 하지 못하셨지만 콧대 높은 프랑스 사람들과도 영어로 막힘없이 담판을 짓는 지사장님을 보면서 프랑스어를 무기로 하되 영어는 계속해서 갈고 닭아야 하는 기본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추후에 다시 한번 다루겠지만 이 생각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

아무튼 L패션 회사에서 주재원 생활을 오랜 기간 해오신 지사장님 덕분에 영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참고로 지사장님은 불어를 거의 하지 못하셨다) 현지 채용 직원에서 이제는 지사장 자리를 꿰차고 있는 선배 오빠를 보면서 실무에서 어떻게 본인의 강점을 드러내는지 어떻게 세일즈를 하는지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또다시 꿈같은 6개월이 지나고 인턴이 막바지에 달할 때 즈음, 2008년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놓고 떠났던 인턴생활의 마지막이 어쩐지 불길했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이랑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지금처럼 실시간 정보공유가 수월하지 않았던 탓인지 그야말로 현실감각은 크게 없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인턴'까지 하고 왔는데 설마 취업이 안 되겠어? 하는 순진한 마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사장님 이하 파리지사에서 나는 나름 평가가 좋은 편이었고 귀국 전에 지사장님께서 직접 추천서까지 챙겨주셨던 터라 솔직히 말해서 취업이 그렇게 안될 줄 몰랐다.


그리고 다시 오기가 생겼다.

안되면 될 때 까지 해보리라.

원한다는건 할수 있다는 것이랬으니까.


인턴시절 일끝나고 걸었던 거리를 다시 걸었다. 그리고 집앞에 밀페이유가 끝내주던 빵집
인턴시절 머물렀던 집앞에서, 그리고 내 점심을 책임져 주었던 샌드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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