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 3

친철한 여행자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돕는 이가 나타난다.

(그렇기에 그 많은 위기를 거쳐오면서도 아직 살아있다!)


그를 만난 건 산티아고까지 걸어가는 여행길 위였다.

우리는 정말 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며 그 길을 걸었다.

엄마의 무릎 부상, 식중독, 호흡곤란, 흉가체험 등등등...

(언젠가는 그때의 그 여행의 해프닝들을 이야기해보겠다!)


그를 만나기 전날 우리가 도착했던 동네는 축제가 한창이었는데

볼거리는 많았지만 남은 숙소가 하나도 없었다.

엄마는 무릎 부상의 여파로 더 이상 걷기는 힘들었고

난감한 상황에 낯선 남자가 소개하는 민박집에 마지못해 머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그 집은 짐을 풀고 나니 미스테리함과 섬찟함이 가득한 흉가였고

소름이 돋아서 쉬려고 갈아입었던 잠옷바람으로 대충 짐을 싸들고

다음 마을로 도망치듯 다시 길을 나섰다.


아무런 계획도 사전조사도 없이 모르는 동네에 도착하니

숙소도 없고 날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흉가에 놀라 여전히 가슴이 뛰고 난감한 상황에 어쩌나 하는 우리에게

수녀님 한분이 걸어오셔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별 수가 없어서 그냥 따라가니 성당에 붙어 있는 강당을 개조한 순례자 숙소였다.

3층 침대가 즐비했는데도 사람이 너무 많아 남는 자리는 없었다.

신부님이 나오셔서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줄테니 하루 지내보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바닥에 짐을 풀고 마련해주신 소박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육체적으로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없이 편안한 하룻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려는데 누군가 활짝 웃으면서 매너좋게 문을 열어준다.

가는 방향을 친절하게 가리키며 하루의 행운을 빌어주니 응원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회복이 더딘 엄마의 무릎을 위해 우리는 자주 앉아 쉬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 사람이 끼익 브레이크를 잡았다.

아침에 문을 열어주던 그 사람이다.


영국에서 자전거로 출발했다는 그 사람은 산티아고를 거쳐서 아프리카까지 가는 중이란다.

우리 모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엄마의 무릎 때문에 자주 쉬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았는데

그는 과거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아예 걷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절망했지만

비극적인 진단을 믿지 않고 회복을 위해 계속 움직이고 노력을 했단다.

그런 과정에서 인디언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의 여러가지 민간요법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은 이렇게 건강해져서 튼튼한 두 다리로 페달을 밟으며 긴 여행중이란다.


어디로 보나 건강해보였다.

운동으로 균형잡힌 몸도, 절망을 이겨낸 사람의 빛나는 안색도.


그 사람은 우리 모녀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신세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우린 극구 사양을 했지만

혼자서 골똘히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그 사람은

갑자기 우리가 앉아있던 작은 다리 밑,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로 뛰어내려갔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고는 물속을 헤치고 붉은 진흙을 캐내더니 비닐봉지에 담아왔다.


인디언 친구가 알려줬던 민간요법인데, 붉은 흙은 치유력이 있단다.

숙소에 도착하거든 붉은 흙을 무릎에 잘 바르고 기다렸다가 씻어내보라며

내 배낭에 진흙덩어리를 담아줬다.


배낭의 무게가 늘어났고, 의심병이 깊은 나는 민간요법을 잘 믿지도 않는다.

평소라면 달갑지 않았을 그의 호의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나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무거운 진흙을 다음 숙소까지 기꺼이 지고 갔고

몇번에 걸쳐 시키는 대로 엄마의 무릎에 발라보기도 했다.


플라시보 효과였을지,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걷는 여정이 좋은 재활이 되었는지

혹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었는지 엄마의 무릎은 차츰 많이 좋아졌고

우리는 800킬로미터를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꼭 건강하게 산티아고까지 도착하길 바란다며 응원과 격려를 하던 그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수차례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던 그 웃는 얼굴은

친절한 사람의 상징처럼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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