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我일기

+181 엄마는 도울 뿐

수면교육

by 갱그리

아기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어가면서 아기는 부쩍 자랐다. 체중도 키도 딱 평균. 알맞게 성장해가는 아기에게 감사만 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나름대로 고민이 늘고 있었다. 잠투정 때문이었다. 아기는 잠들 때마다 잠투정이 심해 내가 늘 아기띠로 안아 재우고 있었다. 안그래도 나는 디스크를 앓고 있었고 심한 골반 틀어짐으로 산전에도 관리 대상이었던 몸이었는데, 아기를 매번 안아재우니 허리 통증은 나날이 더 심해져만 갔다. 허리 치료를 위해 주 2회, 공공기관에 아기돌보미를 신청하여 요가도 다녔지만 골반과 허리는 악화되기만 했다. 허리 부담이 적다는 상품으로만 고르고 골라 샀던 아기띠와 포대기도 하루 5번 이상, 그리고 매회마다 최소 20분 이상 아기를 매달고 있자니 영 효력을 내지 못했다.


사실 나도 '수면교육'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수면교육의 교과서라는 책도 사서 보고, '똑게육아'에 대해 찾아보기도 하고 했지만 안아 재우지 않고 눕혀 재우는 습관을 들이는 건 글로 배워선 영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몇 번이나 수면교육을 시도해봤지만, 아기는 넘어갈 것처럼 자지러지기만 했지 결코 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으면 푹 자는 아기를 내가 애써 눕혀 재우겠다고 고생시키는 것 같아, 수면교육에 마음을 먹었다가도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날이 반복되던 중 아기는 5-6개월 사이의 급격한 성장기를 맞이했다. 내게도 정말 힘든 날들이었다. 이때는 안아재우려고 해도 정말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아기띠로 안으면 종종 울긴 했어도 포대기로 업으면 단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포대기로 업어놔도 등을 두드리면서 울어댔다. 안아도 울고, 업어도 울기에 내려놨더니, 이번에는 내려놨다고 울어댔다. 다리가 아픈가 싶어 다리를 주물러줘도 울고, 밥인가 싶어서 밥을 줘도 울고.. 정말 왜 우는 건지 모르겠는 날들이 힘겹게, 힘겹게 이어졌다.


이때에는 아기를 한 번 재우려면 대여섯번은 안았다 내려놨다를 반복해야 했다. 안고 있다가 울기 시작하면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놀리다가 울기 시작하면 다시 안고.. 뭘 원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나 아기가 누워있는 것과 안고 있는 것, 둘 모두를 굉장히 불편해한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아기 본인도 어떻게 자야 할 지 모르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이 아기를 안았다가 울면 내려주고, 내려놨다가 울면 안고를 반복하던 날이었다. 이 반복 사이클의 끝은 늘 이전처럼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재우는 것이었는데, 이날은 내가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누운 아기 옆에 누워 잠시 졸아버렸다. 그리고 조금 후 잠에서 화들짝 깨어 눈을 떴는데, 뜻밖에 아기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최초로 이 반복 사이클이 '누워 자기'로 끝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섣불리 희망을 품진 않았다. 아기가 워낙 피곤해서 그랬겠거니 했는데 뜻밖에 그 다음 번 수면에서도 아기는 마지막에 누워서 잠들었다. 그러더니 하루, 이틀 점차 안아주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누워서 놀다 잠든다. 물론 옆에 내가 함께 누워있어야 하지만, 나도 편안한 자세로 아기와 눈 마주치며 웃어주다가 잠을 재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쁠 뿐이다.


아기띠 없인 단 하루, 아니 반나절조차 버티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외출할 때가 아니면 아기띠를 구태여 찾지 않게 됐다. 물론 아기는 또 변할 수 있다. 아프거나 힘든 날엔 또 안아서 재워달라고 징징거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찾은 새로운 교훈은, 내가 일부러 환경을 조성하지 않아도 아기가 스스로 자신의 때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아기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 아기는 그랬다. 내가 엄마로서 이 아기에게 대신 결정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대신 결정하려고 하면 아기는 악을 쓰고 반대했다.


'모든 아기에겐 때가 있다.' 그리고 또 반대편에선 '엄마가 습관을 만들어줘야 한다.'라는 주장이 있다. 둘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아기"에게는 두 개의 주장 모두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내가 습관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아기의 때를 기다려줘야 하는 것도 있다. 어떤 아기에겐 수면 교육이 조절 가능한 습관일 수도 있지만 수유 텀만은 아닐 수 있고, 또 어떤 아기에겐 수유 텀은 조정 가능하지만 수면 교육만은 자신의 때가 필요할 수 있다.


우리 아기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인격체일까. 육아는 이 하나의 인격체를 깊이있게 탐구하면서, 나의 결과 아기의 결을 조심스레 맞춰 가는 일이다. (물론 내가 억지로 맞춰줘야 하는 경우가 훠-얼-씬 많긴 하지만..) 누구 한 사람만의 의도로는 쉬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어렵던 수면교육. 결국 나는 수면교육을 포기한 채로, 의지를 꺾어버렸지만 이번에는 아기가 먼저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단지 옆에서 도왔고 아기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을 뿐인데 아기는 우리 둘이 모두 건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변해주었다.


앞으로도 이런 때가 많을 것임을 짐작한다. 숱한 선택의 길에서 나는 내 의지를 버려야 할 것이다. 아기가 진짜 변하기를 원할 때에야 함께 핸들을 꺾을 수 있겠지. 그 전까지 나는 그저 아기의 때를 가만가만 기다릴 뿐. 아기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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