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리 각자의 영화관 Aug 28. 2024

런던의 독립 영화관을 찾아서 1

Prince Charles Cinema


"The Countries Funkiest Cinema"
(Evening Standard)

런던의 많은 독립 영화관 중 어디부터 소개를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개인적으로 우각영 프로젝트에 많은 영감을 준 Prince Charles Cinema를 가장 먼저 이야기해볼까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영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관으로 유명한 Prince Charles Cinema(이하 PCC)는 내가 런던에 오자마자 처음으로 멤버십을 가입했던 영화관이다. 런던의 충무로 같은 역할을 하는 Leicester Square에 위치해 있으며, 주로 아트하우스 영화 또는 클래식 영화를 위주로 상영한다. 프로그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티켓 값이 다른 영화관에 비해 저렴한 편.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나 홀로 집에’(1990)의 대사로 변경된 PCC의 간판. 시즌에 따라 스태프들이 주기적으로 변경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출처: PCC 공식 트위터).


영화관 이름에 있는 ‘프린스 찰스’는 우리가 아는 ‘그’ 찰스가 맞다. 현재는 왕이 된 찰스 3세가 왕세자이던 시절 그의 이름을 딴 Prince Charles 빌딩에 위치해 있어 영화관의 이름이 PCC가 되었다고 한다.


PCC는 지난해 찰스 3세 대관식에 앞서 영화관 이름을 변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출처: Evening Standard).


우스갯소리로 찰스 3세가 왕에 즉위하며 King Charles Cinema로 변경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극장 관계자가 한 인터뷰에서 이름을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반면 런던의 오래된 극장인 His Majesty’s Theatre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이후 빠르게 Her Majesty’s Theatre에서 이름을 변경했는데, 군주에 따라 극장 이름을 변경하는 것이 그들의 오랜 전통이었다고 한다.


1962년에 오픈한 영화관이라 내부가 제법 고풍스럽다(출처: PCC 공식 웹사이트).


이 영화관의 스크린은 단 두 개, 위층에 있는 작은 스크린(104석)과 지하에 있는 큰 스크린(300석)이 전부다. 그래도 35mm 및 한국에는 보기 드문 70mm 필름 영사기도 가지고 있고 디지털 상영도 물론 가능하다. 이 극장에서 오래전에 일했던 지인의 말에 의하면 작은 스크린은 나중에 추가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유머러스한 PCC의 자체 제작 상품들(출처: PCC 공식 홈페이지)


무엇보다 PCC는 독특한 자체 프로그래밍으로 유명한 영화관인데, 보통 PCC 하면 컬트 문화의 아이콘 같은 느낌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프로그램을 보면…


런던 튜브에서 광고도 진행하는 The Room의 상영. 처참한 별점으로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다(출처: PCC 공식 페이스북).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 중 하나는 ‘The Room’(2003) 상영이다. 역대 최악의 영화로 손꼽히는 컬트 영화인 이 작품을 꽤나 자주 상영하는데, 이 영화는 영화 작품 자체의 악평(“나쁜 영화계의 시민 케인”이라는 평이 가장 유명하다)뿐만 아니라 영화 관람 시 관객들의 리액션으로 더 유명하다. 예를 들면 영화 중간에 특정 장면에서 관객들이 다 같이 스크린을 향해 스푼을 던지는 것이 전통인데… 이제는 하나의 놀이문화가 되어 영화를 주기적으로 관람하는 팬들이 제법 있다. 감독도 이런 반응을 즐기는지 직접 Q&A에 참석하는 스크리닝 행사도 종종 진행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이나 ‘록키 호러 픽쳐 쇼’(1975)의 싱얼롱 상영도 꽤 자주 하고, 파자마를 입고 참석하여 새벽 내내 영화를 올나잇으로 감상하는 파자마 파티 프로그램 등 흥미로운 작품을 재미있게 프로그래밍한다.


PCC의 더블 빌 프로그램 포스터(출처: TimeOut)


특정 달에는 거장 감독의 작품전도 진행한다. 히치콕의 작품 등 오래된 클래식 영화를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에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고, 최근에는 왕가위 감독의 작품전을 자주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을 마라톤으로 상영하는 ‘비포 트릴로지’ 프로그램은 직접 관람해보기도 했는데 대사 많은 영화 세 편을 연달아 작은 영화관에 갇혀 보고 나오니 얼굴이 노랗게 변해서 나오기도 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영국 현지 영화제에서 일할 당시에 영화관에 맞춰 상영할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것에도 꽤 시간을 많이 쏟았는데 이는 각 영화관의 특성에 따라 관객들의 성향 차이가 크기 때문이었다. 영화제를 보고 참석한다기보다는 영화관의 주요 고객층이 영화제에 오는 느낌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영화제 측에서도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화제 상영작 중에 가장 컬트적인 영화를 PCC에 주로 편성하는 것 같다.


이제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는가? 무엇보다 이런 괴짜 같은 영화관이 60년이 넘게 운영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부럽다. 고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컬트 영화의 성지 PCC가 당신에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졌길 바란다.



글쓴이 : 런던의 D

런던에서 영화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 영화 홍보마케팅 일을 했으며 영국에서 미디어와 관련한 짧은 공부를 마쳤다. 현재는 영화제, 영화관 등 영화 관련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중.



이전 11화 작고 아름다운 나의 노란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