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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각자의 영화관 Oct 23. 2024

1인분의 단정함

Perfect Days(2023)


하얗고 작은 나의 집. 벽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창이 두 면에 나 있어 북동향인데도 낮에는 환하다. 겨울엔 외풍으로 코가 시릴 만큼 춥지만, 그럼에도 탁 트인 느낌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곳이다. 이 집에서 생활한 지 벌써 4년 하고도 8개월이 흘렀다. 오롯이 내 힘으로 구한 두 번째 집이자, 혼자서는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


1인 가구의 최대 장점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일상의 모든 것을 오로지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집을 구한 뒤 가장 먼저 신경 썼던 부분은 구석구석을 내 취향에 맞춘 색과 모양으로 채우는 일이었다. (주로 하얗거나 까맣고 군더더기 없는 것들이다.) 눈에 닿는 곳에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물건이 있다면 모두 치워버렸다. 게다가 이 공간에서만큼은 스스로 내는 소음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때로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고요하게 보낸다. 그 평화로운 적막을 사랑한다.


나를 보살피기 위한 습관과 패턴도 몇 가지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을 반듯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씻고 나와 상온의 물을 한 컵 따라 유산균과 함께 마신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서는 바닥을 깨끗이 정리한 뒤 로봇 청소기를 작동시킨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문을 열면 정돈된 집이 나를 맞아준다. 식사 후에는 즉시 설거지를 하고, 2주에 한 번은 침구를 세탁하여 산뜻한 기분을 유지한다. 매일 되풀이되는 작은 행위들이 모여 스스로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한다. 가끔 빼먹어서 생기는 불편은 혼자서 감수하면 그만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3) 속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은 정갈한 삶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비슷해 보이는 매일이지만 지루하게 느껴지기보다는 그 단정함이 좋았다. 카세트테이프로 낡은 음악을 듣거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헌책방에서 고른 책을 읽는 등 틈틈이 자신만의 기쁨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매일 같은 나무 사진을 찍더라도 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의 모양은 늘 다르게 포착된다. 같아 보여도 모두 다른 순간이다.


Perfect Days(2023)


이틀 뒤면 정든 집을 떠난다. 이사 준비로 매일이 새롭고 정신없이 바쁜 요즘이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낯설던 공간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루틴이 생길 테다. 설렘과 초조함이 잦아든 뒤 또다시 단정히 반복될 날들을 기대해 본다.




글쓴이 : 서울의 S

틈만 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날 계획을 세우는 브랜드 디자이너. 매일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주의자이지만, 동시에 먼 곳의 낯선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영화와 여행의 공통점은 비일상의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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