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hoes in Time (시간의 메아리, 10/28-12/31)
The [South Korean] films I’ve seen…have enriched me, educated me, disturbed me, moved me, and awakened me to new possibilities in cinema.
– Martin Scorsese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2019)으로 오스카 수상소감을 하며 헌사를 바쳤던 대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한국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본 한국 영화들은 자신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자신을 가르치고, 마음을 어지럽히고, 감동을 주었으며 시네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일깨워주었다고.
10월 28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한국의 영진위와 유사한 기관이자 영국의 최대 영화 기관인 영국영화협회 British Film Institute(이하 BFI)에서 한국 영화를 집중 조명하는 코리안 시네마 시즌(Korean Cinema Season)이 시작된다. 한국 영화에만 포커싱 한 프로그램은 이번이 BFI 사상 최초이며, BFI에서 이렇게 ‘국가’를 주제로 한 대규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많지 않은 나라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기 때문에 꼭 소개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영화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영국의 BFI는 생각보다도 진입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기관이다. 물론 티켓이 어느 정도 팔릴 것인가 하는 작품의 인지도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그들이 생각하는 본인들의 수준이 맞는 작품이 아니라면 작품 상영이 어려운 콧대 높은 곳이기 때문에 이번 기획 프로그래밍은 그 자체로 영국 내에서의 한국 영화의 위상이 올라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물론 그들이 인정해 주느냐가 우리의 가치를 정하지는 않지만,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문화의 힘을 매번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감개무량하다. 대체로 문화적 호감도와 그들의 호의는 비례하는 경우가 많기에 더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이런 수혜를 누렸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다.
이번 코리안 시네마 시즌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로 한국영화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60년대 작품과 한국 영화의 새로운 물결 ‘뉴 시네마’ 시기인 1990-2000년대 작품을 조명하며 총 42편을 70회 이상 상영한다. 대부분 4K 화질로 디지털 복원한 작품으로 개중 몇 작품은 영국 최초 상영이기도 하다. ‘오발탄’(1960), ‘안개’(1967), ‘쉬리’(1999), ‘접속’(1997),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 현재는 11월까지의 프로그램만 공개되었으며, 12월 프로그램은 추후 공개될 예정. 자세한 프로그램은 이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가여운 것들’(2023)을 연출한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진행되고 있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Save the Green Planet!)’(2003)의 경우 장준환 감독이 직접 참석해 Q&A를 진행할 예정이고, 일부 상영에는 작품을 선정한 기획전 프로그래머의 인트로나 상영 후 토크도 예정되어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 상영에는 영화 각색에 참여했던 이언희 감독이 인트로에 참석할 예정이며 런던한국영화제도 이 특별전의 일환으로 코리안 시네마 시즌 기간에 함께 진행된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 글을 읽는 독자가 많지는 않지만 이 글이 홍보로만 느껴지지 않았으면 해서 우각영 멤버들에게도 미리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당신이 만약 런던에 거주하고 있거나 같은 기간 런던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한 번쯤 해외에서 한국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나도 아직 보지 못했거나 좋아하는 영화들 중 몇몇 작품은 참석해 관람할 예정이다. 자국의 콘텐츠를 다른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몰입하는 순간은 그 자체로 굉장히 인상적이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 오히려 나보다 더 몰입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고.
때때로 이상한 오역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관객들이 즐거웠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것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는 각자의 영화가 되니까.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한국영화를 즐겨줬으면 하는 건 나의 작고 소소한 욕심이다. 혹시라도 BFI 코리안 시네마 시즌을 참석하게 된다면 어느 곳이든 많은 후기를 남겨주길 바란다.
글쓴이 : 런던의 D
런던에서 영화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 영화 홍보마케팅 일을 했으며 영국에서 미디어와 관련한 짧은 공부를 마쳤다. 현재는 영화제, 영화관 등 영화 관련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