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국내 영화제
봄의 끝자락 전주와 무주, 한여름의 정동진과 제천, 초가을 부산에서는 매력적인 영화와 프로그램이 무수히 반짝인다. 나의 지난 국내 여행이 즐거웠던 이유도 지역 영화제에서의 행복한 기억 덕분이다.
5월 전주, 6월 무주는 무덥고도 아름답다. 7-8월 정동 초등학교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모기향으로 가득하며, 제천 호숫가에서 어우러지는 영화, 음악의 향연은 무척 낭만적이다. 10월의 부산은 이리저리 극장을 옮겨 다니며 영화를 챙겨 보느라 약간 땀이 나기도, 이따금 찾아오는 가을 태풍의 영향으로 야외상영을 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제는 서로 다른 계절의 모습을 오롯이 품고, 찾아온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한다.
전주의 맛있는 음식과 무주의 산골, 정동진 바다, 제천의 의림지와 청풍호, 부산의 활기찬 분위기 등 지역의 풍경은 축제를 즐기는 마음을 한껏 더 들뜨게 만든다. 신작 영화와 먹거리, 전시와 공연 등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다니, 영화제와 사랑에 빠진 것은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제에서는 패키지여행처럼 빡빡한 스케줄에도 딱히 피곤한 적이 없었다.
박찬욱, 허진호 등 평소 좋아했던 영화감독의 GV에 참가하고, 대학교 동기들이나 제주에서 우각영 프로젝트를 하며 만났던 사람들을 우연히 마주치는 것도 신기했다. 영화제는 고퀄의 콘텐츠를 마음껏 누리는 무대인 동시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또한 새로운 영화를 가장 먼저 관람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영화제에서 본 영화가 개봉될 시점이면 괜히 알은 채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특히 부산에서 상영된 '라스트씬’(2019)이나 전주 영화제의 ‘국도극장‘(2020)은 사라지는 지역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 애틋했다.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미처 보지 못했을 특별한 작품들은 제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와 나의 마음에 머물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첫 장에 쓰인 ‘수많은 축제를 위하여'. 정작 소설 내용은 잘 모른 채 꽤 오랜 세월 기억에 남아있던 이 문구를 이번 일기의 제목으로 걸어둔다. 수많은 국내 영화제를 위하여, 부디 크고 작은 전국의 영화제들이 제 색깔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개최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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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영화제
2024. 10. 02. (수) ~ 2024. 10. 11. (금)
제주 여성영화제
2024. 10. 09. (수) ~ 2024. 10. 13. (일)
제주 프랑스영화제
2024. 10. 23. (수) ~ 2024. 10. 27. (일)
글쓴이 : 제주의 Y
제주에서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산다. 예술학교의 광고학도로 기획이나 마케팅 등을 접하고, 육지에서 짧게 독립영화사 인턴과 영화제 스태프로 일했다. 언젠가 본인이 사랑하는 제주섬에도 좋아하는 영화관이 생길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