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엔걸 스즈코(2008)
지난주까지만 해도 늦더위가 기승이더니 거짓말처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여름내 그을린 살갗은 그대로인데 창을 열면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코에 닿는다. ‘9월에 이렇게 더운 게 말이 돼?’ 하고 투덜댔었지만, 막상 가을이 성큼 다가오니 괜스레 아쉬운 기분이 밀려온다. 여름이란 지나고 나면 금세 그리워지고 마는 계절이다. 무덥게 숨 막히는 공기와 따가운 햇살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가도, 딱 한 발짝 멀어진 뒤 돌아보면 그저 청량하게 반짝이는 장면으로만 기억된다.
길가의 초록빛이 울창해지기 시작할 즈음에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2008)를 보았다. 스즈코가 도망친 곳의 계절은 언제나 여름이다. 해변 앞 가게에서 빙수를 만들 때도, 산골 마을에서 복숭아를 딸 때도, 소도시의 꽃집에서 일할 때도 늘 하늘하늘한 반팔 블라우스나 민소매 차림이다. 영화 속 여러 가지 모양의 여름 풍경들을 보다가 문득 지나온 몇 번의 그 계절을 떠올린다.
교토에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고즈넉한 수상가옥이 늘어선 작은 어촌 마을이 나온다. 낡은 목조 건물 틈새로 바다가 보이고, 물가의 찻집에서는 눈 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풍경을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라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었지만, 초여름이라서인지 괴로울 만큼 덥지는 않았다. 골목 골목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나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따금 가만히 서서 잔잔하게 반짝이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쨍한 빛이 물의 곡선과 맞닿아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한 윤슬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얼마 만인가 싶었다.
일본의 해수욕장은 처음이었다. 비치 하우스를 하나 골라 들어가 한 사람당 1500엔을 내면 탈의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해변 앞 좌식 테이블을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 나는 매우 정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그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굳이 물에 풍덩 뛰어들지 않고도 선풍기 바람을 쐬며 앉아 내 식대로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스즈코가 만들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빙수를 하나 시켜놓고, 해변을 뛰어노는 아이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가냘픈 야자수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불과 며칠 전 다녀온 가마쿠라는 9월 중순이라는 시기가 무색하게 뜨거운 날씨였다. 상상 속 여름방학을 재현해놓은 듯한 시골집에 짐을 풀어두고 밖으로 나왔다. 잠깐만 걸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에 제대로 돌아다니기가 어려웠다. 땡볕과 세찬 바닷바람에 질릴 대로 질려 다시는 여름의 일본에 오지 않겠노라 다짐할 정도였다. 그렇게 내내 야속할 만큼 맑던 날씨였는데, 마지막 날에는 흐리고 이슬비가 내려서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돌아와서 열어본 사진 속에서는 그렇게 힘들었던 쨍한 날들이 훨씬 아름다웠다. 새파란 하늘, 일렁이는 코모레비, 모든 순간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대비가 어찌나 찬란하게 느껴지던지!
방학 숙제 그림일기처럼 여름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모아 서랍 깊숙이 밀어 넣는다. 푸르던 잎이 다 떨어진 뒤 앙상하게 남을 무채색 계절을 지나는 동안 하나씩 꺼내볼 눈부신 시간들. 언젠가 나도 어딘가로 도망쳐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곳이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훗날 떠올렸을 때 아름답게 빛나던 시절로 남을 수 있도록.
글쓴이 : 서울의 S
틈만 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날 계획을 세우는 브랜드 디자이너. 매일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주의자이지만, 동시에 먼 곳의 낯선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영화와 여행의 공통점은 비일상의 낭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