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 빈센트(2017)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만큼 미술관에서 그림 감상하는 것을 즐긴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공연장에 가는 것도 물론이다. 살면서 수많은 예술 작품을 관람해 왔다. 그런데 이에 대한 조예가 깊은가 하면, 정말 그렇지 않다. 사실 나의 예술적 유희는 작품 그 자체보다 이를 직접 행하고 있다는 ‘체험적 순간’에 집중되어 있다.
그림을 담은 프레임의 색깔, 전시관 소파의 재질, 공간의 분위기, 주인공의 집과 옷, 책의 표지와 두께 등 어떤 한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이면 소소한 변두리에 먼저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정작 작가의 의도나 기법, 가치와 이념 같은 본질적인 것들에 빠져들지 못한 채로 조금 다른 포인트에 애정을 둘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해당 예술 작품에 대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왠지 모르게 조금 외로웠다. 무턱대고 예술가와 작품을 쫓아다니면서도,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깊어지고 싶으면서도 나는 진정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단 생각에 항상 작아지곤 했다. 지금도 나의 감상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래도 두 가지의 예술이 접목되거나 같은 주제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연속적으로 접할 때는 좀 더 즐겁다. 이를테면 화가의 전기 영화나 뮤지컬 영화, 라디오 사연과 더불어 들려오는 노래 가사, 북토크, 미디어 아트 등은 꽤 흥미로운 편이다.
이런 나에게 '러빙 빈센트'(2017)는 여러모로 충만감을 주는 영화였다. 세계 최초 손으로 그린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니, 어렴풋이 알고 있던 고흐의 삶이 스크린을 액자 삼아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후 프랑스 아를을 여행하며 다시 영화를 떠올렸다. 마치 고흐의 작품 속에 들어온 듯 마을 곳곳을 오래 걸어 다녔다. 그곳에서 구입한 엽서는 책장과 화장대 거울 한 귀퉁이에 붙여두고 매일 감상한다.
긴 세월 닥치는 대로 접한 작품들은 일단 꼬깃꼬깃 접어 마음속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또 마주하게 되면 다시 꺼내어 펼쳐 볼 계획이다. 여전히 소리 내어 읽거나, 누군가에게 공감을 바라며 건네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만의 방식으로 써 내려간 감상평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다.
글쓴이 : 제주의 Y
제주에서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산다. 예술학교의 광고학도로 기획이나 마케팅 등을 접하고, 육지에서 짧게 독립영화사 인턴과 영화제 스태프로 일했다. 언젠가 본인이 사랑하는 제주섬에도 좋아하는 영화관이 생길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