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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각자의 영화관 Nov 13. 2024

애쓰지 않는 즐거움

프랭크(2014)


’나는 왜 프랭크가 될 수 없지?’라는 생각이 들 거야. ‘나도 프랭크가 될 거야’라든지. 하지만 프랭크는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어.

- 프랭크(2014)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건 축복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일수록 기준과 이상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좌절과 괴로움의 연속일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회피형 완벽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대학 시절, 전공 과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으면 자체 휴강을 해버리는 사람—그게 바로 나였다.


살아오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내 마음의 번뇌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대충’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려 하지 않기. 여가 시간에는 머리를 쓰지 않기. 딱 즐길 수 있을 만큼만 하기.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하려면 힘을 빼면 된다. 부단한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냄으로써 성취감을 느끼는 이가 있는 반면, 이런 방식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 편이 맞는 사람도 있는 거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도 사진일 텐데, 정작 카메라의 세부적인 기능은 잘 모른다. 기본적인 설정 외에는 자동으로 두고 찍는다. 섬세하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찰나를 담아내기엔 충분하다. 와인과 위스키를 즐겨 마시지만 종류에 해박하지 않다. 바에 가면 선호하는 맛과 향의 대략적인 느낌을 설명한 뒤 추천을 따르곤 한다. 전문가가 골라준 술은 높은 확률로 맛이 좋다. 알고있던 몇 가지에 갇히지 않고 늘 새로운 걸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두 달 전부터는 베이스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밴드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지만 직접 연주해 보는 건 처음이다. 취미 위주의 학원이라 그런지 기초를 숙지하는 단계를 적당히 건너뛰고 냅다 곡부터 시작했는데, 비록 실력은 엉망일지라도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즐겁다. 타인에게 들려줄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마감 기한이나 평가에 대한 압박감 없이 자유롭기도 하다. (아마도 선생님께 성취감을 드리기는 어렵겠지만.)



'프랭크'가 되려 하기보다는 그가 만든 멋진 음악을 그저 즐기는 것.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이다. 무리해서 에너지를 쏟지 않고 경험에 의의를 두다 보면 어느새 나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져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글쓴이 : 서울의 S

틈만 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날 계획을 세우는 브랜드 디자이너. 매일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주의자이지만, 동시에 먼 곳의 낯선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영화와 여행의 공통점은 비일상의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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