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옛날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북극곰사를 배경으로 찍은 그 사진은 20년 전 사진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또렷했습니다. 무척 더운 여름날의 땡볕 아래서 북극곰은 긴 혀를 내밀고 터덜터덜 사육장 좌우를 왕복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저는 ‘우리도 더운데 너는 얼마나 덥겠니?’ 라며 혼잣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북극에 사는 곰에게 30도가 넘는 한국의 여름 날씨 자체가 고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동물원과 수족관을 찾았지만 그곳의 동물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야생에서 동물들을 만나는 경험들이 쌓이면서부터 동물원에 가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이따금씩 접하는 동물원 동물들의 영상이나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고 야생과 비견되는 그들의 삶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에게 동물원과 수족관은 어느 장소보다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동물원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진 곳입니다. 우리가 동물원을 찾는 이유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야생동물을 보기 위해서이지요. 그렇게 자연을 소비하기 위한 공간이지만 동물원 동물들은 분류상 ‘전시동물’로 구분되어 콘크리트, 타이어, 나일론 그물, 인조 잔디처럼 완전히 자연과 동떨어진 시설물들 속에 갇혀서 살아갑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동물들의 멋진 모습은 그곳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동물원은 그들의 원래 보금자리인 자연과의 괴리를 인식하게 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는 좁은 우리 안을 쉼 없이 맴돌고, 산양은 반복해서 철창에 뿔을 박고, 맹금류들은 날지 않고 주로 앉아 있거나 걸어 다닙니다. 돌고래와 원숭이는 자연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동작들로 이루어진 공연을 하고, 곰들은 지나가는 관람객에게 손을 흔들며 먹을 것을 구걸합니다.
주로 전시동물들에게서 보이는 ‘정형 행동’ 은 의미나 목적 없이 특정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이상행동을 말합니다. 야생성이 강한 동물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살며 생리학적 특성과 본능에 맞는 표현을 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좌절과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앓는 것입니다.
사람처럼 자아의식과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는 돌고래나 코끼리 같은 동물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원래 수명에 반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다수의 동물들은 관람객이 던져준 부적절한 먹이들을 먹고 탈이 나거나 만성적인 질병에 시달립니다. 2011년 광주의 한 동물원에서 기린이 갑자기 숨을 거두었는데, 부검 결과 기린의 위 속에서 노끈, 비닐, 과자봉지, 면장갑 등이 발견되었고, 2015년 서울동물원에서 죽은 물범의 뱃속에서는 120개가 넘는 동전이 나왔습니다.
개체수가 넘쳐서 전시 공간이 부족한 경우 해당 동물들은 잉여 개체로 선정되는데 이런 ‘잉여 동물’ 들은 지자체의 입찰을 거쳐 식용이나 약용을 위한 도축 농장에 매각되거나 경우에 따라 안락사를 시키게 됩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실내 체험 동물원이나 이동 동물원은 동물을 직접 만져보거나 먹이주기를 경험할 수 있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운영자 측은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아이들의 정서 발달과 자연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교육을 가장한 동물학대라는 비판과 함께 인수 공통 전염병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사람들은 동물의 눈을 바라보거나 털을 쓰다듬고 먹이를 주는 행위가 그들과 교감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서도 그런 행동들이 교감을 의미할까요?
야생 동물은 다른 동물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합니다. 먹이사슬 구조 안에서가 아니라면 야생에서 다른 동물과 접촉할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많은 동물들은 똑바로 쏘아보는 행위를 위협으로 느낍니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이야기하는 교감은 오롯이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착각입니다. 게다가 대부분 야생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동물들은 자기가 처한 환경이 본디 있어야 하는 곳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지요. 동물원은 동물과 인간, 쌍방의 착각이 빚어지는 공간인 셈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물원과 수족관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동물원의 주요 관리 부처는 물론 의무 규정도 없었고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동물원을 설립,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유행처럼 지역마다 공영 동물원을 지었지만 동물원 설계, 공사의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구조물들만 들어섰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공영 동물원들은 넉넉지 못한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탓에 동물들은 노후화된 시설에서 부족한 사육 인력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장기 휴업으로 동물들이 방치되거나 사설 농장이나 다른 동물원들로 팔려가는 안타까운 일들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참에 동물원들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운영 중인 동물원을 없애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동물원에서 오래 생활했거나 그곳에서 태어난 동물들은 이미 야생성을 잃어 실제 야생에서는 생존이 어렵습니다. 개발과 오염 등으로 서식지가 훼손되어 돌아갈 곳이 없거나 그 자체로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린 동물들도 있습니다. 야생은 치열한 생존의 세계이기에 어떤 동물들에게는 야생보다 동물원의 환경이 생존에 유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최근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 수족관법)’ 이 개정되면서 동물원 설립과 운영은 기존의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되었고 신규 수족관의 고래류 동물 전시가 전면 금지되는 대신 가상현실 체험관 같은 디지털 체험시설을 국가에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동물의 등에 올라타거나 손으로 만지고 먹이를 주는 등 동물복지를 저해하는 행위도 금지되고 동물 종 별로 적정 서식환경, 질병관리 계획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법안의 세부 사항은 보안할 점이 많지만 넓은 의미로 동물 복지에 한 발자국 다가선 성과이자 동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동물원은 엄밀히 말해 전시 시설이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만납니다. 야생이나 대자연을 볼 기회가 없는 도시 사람들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도 경험하기 위해 동물원과 수족관을 방문하고, 비록 갇혀 있는 동물이지만 아이들은 그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듬고 공존해야 할 소중한 생명으로서 동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로 인해 지구에서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동물원은 머지않은 미래에 동물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될지도 모르기에 더 이상 전시에만 치중하고 생태와 단절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동물원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고 보다 나은 동물들의 삶을 위한 배려의 방법을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시 중심에서 생태중심으로 동물원의 환경을 바꾸는 일은 이미 세계적 추세입니다. 이는 동물 복지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동물원의 목적이 ‘동물 소장’에서 ‘자연보호’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구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동물을 가둬 전시하던 동물원이, 차츰 멸종 위기 종을 복원하고 서식지를 보호하며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는 기관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통해 동물의 입장에서 먹고 놀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 동물원들 변화하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먹이를 분산시켜 숨겨놓거나 움직임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놀잇감을 배치해서 행동반경을 넓혀주고 사고력을 높여서 동물들의 무료함을 달래고 정형 행동을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자연의 모습을 재현한 인공 바위나 우물, 흙바닥을 이용하여 자연생태계와 최대한 비슷하게 사육환경을 리모델링하고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육사가 각 동물들의 특징과 습성을 설명하거나 나아가 설명회, 가이드북, 사진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를 막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종 보전은 동물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생존에 취약한 종을 존속하게 하여 멸종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야생동물 서식지 외 보전기관'을 선정해서 수달, 산양, 삵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전하기 위해 종 복원을 연구하고 번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한반도에서 사라졌던 토종 붉은여우를 복원하여 꾸준히 소백산 일대에 방사하고 있고 2019년에는 청주동물원에서 국내 1급 멸종위기종인 스라소니의 자연번식에 성공하여 세 마리의 새끼가 탄생하였습니다.
‘동물 없는 동물원’ 도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2017년 뉴욕 타임스퀘어에 오픈한 ‘Encounter Ocean Odyssey (인카운터 오션 오디세이)’ 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기획한 곳으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의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물 한 방을 사용하지 않고 환상적인 바닷속 세계를 구현하였습니다. 디지털 수족관은 단순한 입체 영상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마치 깊은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함으로써 수중 세계를 실제보다 더 실감 나게 보여주고 미지의 영역인 심해의 환경과 생물들을 재현하여 불가능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도 합니다.
작은 취미용 드론으로도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뛰어노는 돌고래와 북극곰을 볼 수 있는 요즘, 가짜 배경에 갇혀 전시품으로 살아가는 동물들 대신 진짜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만나러 가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가 그들의 고향인 산과 바다로 직접 찾아가는 겁니다. 동물원처럼 늘 동물들이 우리를 기다리지는 않겠지만 야생동물을 우리가 원할 때마다 볼 수 없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도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여름이 다가오면 백령도 주변에서는 점박이 물범을 볼 수 있고 제주 바다에서는 사시사철 어렵지 않게 남방 큰돌고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451294&cid=51642&categoryId=51644)
재두루미 서식지로 유명한 주남 저수지, 흑두루미 최대 월동지인 순천만을 지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가창오리 떼의 군무를 볼 수 있는 금강하구까지 철새 도래지 투어를 떠나 볼 수도 있습니다.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도 간혹 산행길에서 최근 들어 개체수가 늘어난 담비나 족제비를 보게 되거나 한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달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동물들을 보며 우리는 이 땅과 바다가 우리와 다른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임을, 사람과 동물 모두가 하나의 자연계 안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때로는 서툴거나 잘못된 방법을 사용합니다. 동물과 자연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공존을 위한 길인 지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도 이제는 전보다 조금 더 성숙하게 동물을 사랑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과 사진 by 김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