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분리수거를 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쌓일 일인가? 혼자 살기 시작한 후로 이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하루 24시간 중 직장에 다녀와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몇 시간 남짓 씻고, 밥 먹고, 청소하는 일뿐, 그런데도 늘 작은 현관에는 플라스틱 무덤이 쌓인다.
하나씩 살펴본다. 음… 다 내가 사용한 건 맞네. 몇 개월 쓰고 버린 샴푸, 집 앞에서 사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피곤해서 시켜 먹은 배달 음식 용기, 다 쓰고 빈 청소용품. 난 그저 일상을 살아간 것뿐인데 플라스틱 사용은 필연적이었다. 이쯤 되면 '플라스틱 프리'를 외치는 게 정녕 가능한 세상일까 의심부터 앞선다.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이 많은 플라스틱은 도대체 어디로 가 있는 거지?
단순히 살았을 뿐인데 플라스틱이 지체 없이 쌓여간다. 직장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내는 1인 가구의 집에 이토록 많은 쓰레기가 쌓이는데, 도대체 지구엔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이 떠돌고 있을까. 자연의 황홀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자처해 만든 쓰레기가 미안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의 귀찮음과 피곤함에 편리함을 선택해버린다.
거창한 대의 말고, 부담스러운 결심 말고. 그저 '우리 집에 플라스틱이 덜 쌓였으면 좋겠다'는 이 마음으로 오늘부터 해낼 수 있는 실천을 찾아본다. 괜찮은 물건을 살핀다. 이왕이면 예쁘기까지 한 것으로. 나는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지구를 바꿀 슈퍼맨도 아니니까. 그저 내가 치울 플라스틱 무덤이 조금은 작았으면, 내가 나이가 들어 누릴 자연이 조금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오늘부터 내가 시작해 볼 수 있는 작은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좋은 의미를 지닌 괜찮은 생김새의 물건은 오랫동안 지니고 싶은 매력이 있다. 너무 많은 변화를 낳지 않는, 오늘부터 사용하기 좋은 괜찮은 '플라스틱 프리' 제품을 소개한다.
대학가, 오피스 단지, 번화가를 지나다 보면 어딘가 한쪽엔 테이크아웃 컵이 줄 서 있다. 이제는 현대인과 한 몸이 되어버린 커피. 하루에도 1~2번씩 찾는 것이 다반사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일회용기를 금지하겠다는 움직임마저 주춤해졌다. 우리가 커피를 자주 찾는 만큼 가장 손쉽게 그러나 눈에 띄도록 실천해 볼 수 있는 것이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유독 인상에 깊이 남은 한 컵을 소개한다. 디자인과 실용성, 친환경 기능을 모두 잡은 '허스키 컵'이다. 허스키 컵은 커피 공정 과정 중 버려지는 커피의 생두 껍질(husk)을 활용해 만든 친환경 텀블러다. 꽤 다양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볼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개인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허스키 사의 소개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의 커피 농장에서 버려지는 허스크 양이 무려 170만 톤 이상이며, 연간 5천억 개가 넘는 일회용 컵이 쓰레기 매립지에 쌓인다고 한다. 매년 5천억 개가 쌓이면 언젠가 바다 위에는 플라스틱이 어디를 가나 떠다닐지도 모르겠다.
허스키 컵은 지구에서 와 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컵이다. 게다가 꽤 근사하다. 커피에 멋까지 필요한 당신이라면 허스키 컵으로 건강한 커피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쓰는 텀블러도 좋다. 다만, 매일 플라스틱 용기에 테이크아웃을 하면서 괜찮은 컵을 찾고 있다면 살펴보길 바란다.
샴푸 용기, 바디워시, 주방 세제가 담긴 용기 하나를 줄인다고 해서 지구가 눈에 띄게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 봤자 슈퍼마켓에는 무수히 많은 세정제가 줄 서 있을 터. 그러나 일상 속에서 무언가 해냈다는 자신감을 느끼기에 이만큼 큰 실천도 없지 않을까? 클렌징 바를 사용한다는 것은 하루 루틴을 바꾸는 일이다.
요즘 다양한 브랜드에서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바디워시 등을 대체한 식물성 클렌징 바가 판매되고 있다. 내 몸과 환경에 직접적으로 닿는 성분까지 생각한다면 클렌징 바는 오늘부터 당장 실천해 볼 만한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조금만 검색한다면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며, 식물에서 유래한 성분으로 신체 건강까지 생각한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게 클렌징 바의 존재를 처음 알게 해준 브랜드는 '동구밭'이다. 한 팝업 스토어를 통해 알게 된 동구밭은 발달 장애인과 함께 식물 성분으로 만든 고체 클렌징 바를 선보이고 있었다. 우리 몸에 해롭지 않은 성분, 친환경 패키지를 통해 피부와 환경 모두에 이로움을 남긴다. '동구밭'뿐만 아니라 '톤28', '아렌시아'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클렌징 바를 만날 수 있다. 디자인과 브랜드의 선택은 당신의 몫. 그저 지구를 위한 색다르고 괜찮은 도전이 필요하다면, 내 몸까지 함께 지킬 수 있는 클렌징 바를 추천한다.
환경 문제를 마주할 때 이따금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말 그대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오늘 다회용기를 쓴다고 저 먼 나라의 공장이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플라스틱 용기에 커피를 마시며 걷고, 마트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많은 음료수가 쌓여 있다. 이럴 거면 나도 '플라스틱이든 뭐든' 생각 없이 쓰고 싶다.
하지만 개인은 기업이 아니기에, 필연적으로 작은 움직임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개인과 개인이 모이면 목소리가 되고, 목소리가 모이면 여론이 되어, 이는 곧 시대의 흐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사실 지난 몇 년간 변화해왔다. 이미 베스트셀러에 수많은 제로 웨이스트 책이 자리 잡은 것이 그 증거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싶을 때 딱 한 번 더 실천하는 것, 그게 나비효과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일단 나부터 작은 날갯짓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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