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교과목을 많이 들었지만 아직까지 기억나는 과목이 몇 개 있다. 그 중, 친환경 에너지와 신재생 에너지를 중점적으로 배우는 과목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신재생 에너지와 친환경적인 삶에 관심이 꽤 있었던 터라 나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신재생, 친환경 에너지의 실체' 파트였다. 들으면서 정말 충격받았던 게, 우리가 흔히 친환경적이다,라고 할 만한 모든 에너지원은 사실 그리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친환경적일지 몰라도 에너지를 생산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친환경이라 부를 수 없었다. 이를테면, 태양광 발전에 이용되는 태양광 패널 같은 경우, 제작 과정에서 일정량의 중금속과 유독성 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에 완전 친환경이라 볼 수 없다. 또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산림이 파괴될 우려도 있다. 실제로 태양광 사업 때문에 2016년 ~ 2019년 3년 동안 상암 월드컵 경기장 6000개 면적의 산림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풍력 에너지 또한 마찬가지다. 풍력 발전기 터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상당량의 희토류가 사용되며 희토류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이 발생한다. 더불어 풍력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소음으로 인해 주변 생물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며 블레이드에 치여 죽는 조류 또한 많다고 한다. 수력 발전 역시 댐을 짓는 과정에서 막대한 환경 파괴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친환경 수소차도 어쩌면 친환경이 아닐 수 있다. 친환경 수소차는 운행을 위해서 반드시 수소가 필요한데 이 수소를 공급받는 방법에는 천연가스를 개질해 만드는 추출 수소, 석유 화학 공정 부산물로 나오는 부생 수소, 재생 에너지 잉여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만드는 수전해 수소, 해외에서 들여온 해외생산수소 등 크게 4가지가 있다. 이 중 천연가스로 만드는 추출 수소가 전체 공급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추출 수소가 비교적 저렴하고 대량으로 생산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추출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추출된 수소 양의 8배가 넘는 이산화 탄소가 배출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추출 수소를 이용한 수소차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연간 탄소 배출량을 16% 밖에 줄이지 못한다. 정부는 추출 수소와 부생 수소를 줄이고 수전해 수소와 해외생산수소를 늘려가겠다고 했지만 2030년까지는 전체 수소 공급량의 50%가 추출 수소로 채워질 전망이다. 기간을 넓게 잡아 2040년까지 봐도 30%로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탈탄소'를 위해 수소차를 대안으로 내세웠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유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친환경이라 불러야 할까? 아니, 애초에 친환경이라 부를 만한 발전 방식이 존재하기나 할까.
한편 지난해 12월 31일, EU 집행 위원회가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친환경으로 분류한 녹색 분류체계(Taxonomy) 개정안을 EU 회원국들에 보냈다. 집행위 최종안은 추가 논의를 거쳐 1월 중순경 확정되는데, 역시 예상한 대로 회원국들의 반발이 거세다. 애초에 원자력을 친환경으로 분류한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동안 친환경 정책에 선두주자로 나선 EU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2019년 기준 유럽 전체 발전원의 26.2%가 원자력 발전에서 나온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로 아직까지도 원전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얘기다. 신재생 에너지 모범국가로 손꼽히는 독일조차 전체 발전원의 11%가 원자력 발전이고 프랑스의 경우 무려 70%가 원자력 발전이다. 제아무리 탈원전을 추구한다 해도 원자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천연가스(LNG)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유럽 동부 지역은 러시아로부터 LNG를 공급받아 에너지를 충당하고 있었는데 각 국가별로 상이하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전체 에너지 조달량의 30%에 달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kW당 발전 원가가 다른 발전소에 비해 적고 탄소 배출량이 석유나 석탄보다 70배 이상 적으며 안정적으로 많은 양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이 한번 사고가 나면 그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참혹하다는 점에서 위험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 더불어 방사성 폐기물이 꾸준히 나온다는 점에서 친환경에 가깝다고 보기는 어렵다. 천연가스는 탄소 배출량이 석탄의 1/5 수준이지만 절대적인 수치는 여전히 많다는 점에서 역시 대체 에너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연합이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카테고리에 포함시킨 것은 정치,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녹색 분류 체계(Taxonomy)는 친환경 마크이다.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의 범위를 지정한 것으로 녹색 금융 투자의 기준이자 지침서다. 이 체계에서 친환경으로 분류되면 금융 조달이 쉬워진다. 원전과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국가들이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불어 기존 신재생 에너지가 가진 간헐성도 원자력의 친환경 선정에 한몫했다. 바람이 불지 않거나 적당량의 햇볕이 내리쬐지 않아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 LNG 가격과 석탄 가격 등이 폭등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LNG 최대 생산국인 러시아와 석탄 최대 생산국인 중국의 영향력은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에너지를 타국가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자원 생산국들에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상황이 많아졌고 이는 결국 안정적인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친환경'의 기준이 다양한 이유로 인해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친환경이라 여겨졌던 풍력, 태양광 발전의 맹점이 드러나고 되레 친환경의 대척점에 있던 원전이 친환경 발전이 되었다. 결국 완벽한 친환경은 없었다. 어느 것이 '더' 친환경 적이고 어느 것이 '덜' 친환경 적이냐, 만 따질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더' 친환경적인 발전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어느 정도 환경의 희생을 담보로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지구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우린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잡을 수 있을까? 현실적인 이유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까, 미래를 위한 투자를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까. 풍력과 태양광, 원전이 정말 '친환경'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1. 북저널리즘, EU가 원자력과 LNG를 친환경으로 분류했다. 무엇이 녹색인가 - 이현구 에디터
2. <중앙일보> 친환경 에너지가 환경 파괴? 풍력 & 태양광에 관한 진실 혹은 거짓 - Youtube 채널 '중앙일보'
3. <조선비즈> “원전 없이 탄소중립 불가능”… 탈원전 배신한 한수원, 소신인가 면피인가 - 이윤정 기자
4. <경향신문> ‘친환경 연료’인 줄 알았는데…천연가스 수소차의 ‘배신’ - 남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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