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이 이야기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약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첫 화를 읽고 오시면 더욱 몰입감있게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박 주임은 숨을 멈추어 맥락을 끊었다. 그는 잠자코 기다리라는 천명인듯 그렇게 몇 초 간의 정적을 이끌었다. 이후 입을 떼며 말했다.
"아니다.... 그냥 일이 있어서 간다."
나는 약간의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던 마음이 팍 식는 것을 느꼈다. 박 주임이 거짓으로 지어낸 건지, 정말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지는 몰라도,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 비스무리한 어떤 감정이 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박 주임은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가 버스에서 내려 가버렸다며 허무하게 성대를 좁혔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애시당초 이 얘기를 왜 한건지도 모르겠고 뭔가 하이라이트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껴질 즈음에, 부장님이 들어오시고 박 주임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은 일을 해도 한 거 같지 않은, 그냥 다소 침울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었기에, 나는 계속히 인쇄물의 교정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일을 할 때면 오로지 종이와 '나'라는 공간을 함께 하며 사람과의 공간을 단절할 수 있다는 것이 이롭다고 느낀다. 또한 말로 할 수 없는 사람의 수정을 종이는 내가 말만 하면 바로 수정된다는 일종의 희열감과 이후의 성취감 역시, 내가 이 일을 소소한 업으로 삼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나는 한때 군중이라는 개체가 내는 소리가 다수라는 이름으로 꾸며진 선동과 날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에 달렸겠지만, '나'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군중이 도움이 될지는 확언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비록 지금에서야 회고하고 있지만, 현재를 회고할 수 없듯이 나는 '나'라는 시절이 영원히 회고할 수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했더니 벌써 집 앞에 도착했다. 늘 가깝다고 여기면서도 오늘따라 더욱이 그런 듯 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복순이가 나를 위해 소리를 내었고,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주셨으며, 아버지는 잠자리에 몸을 누이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을 먹었고, 밥은 참 맛있었다. 그러나 나는 맛을 느낄 겨를이 참으로 복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하루 일과를 하나 빼고 다 마쳤을 때, 나는 그 마지막을 수행하러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그래. 뭐냐...?"
"오늘 아침에 아버지, 16-1번 버스 타셨지요?"
".... 근데?"
"아버지 원래 회사 가려면 17번 버스 타야 하시잖아요. 근데 왜...."
"아, 그거야, 좀 시외에 볼일이 있어서.... 그리고 회사는 조금 늦게 가도 되서 그랬다."
"그래요? 근데 혹시 아버지, 최근에 문경가신 적 있죠?"
"....... 문경...? 어째서?"
"아버지 상주행 버스 타셨을 때, 그때 얘기 나눴던 사람이 제 직장 동료입니다. 그이가 말해 주더군요."
"...음...."
아버지는 부정과 긍정, 혹은 그 사이와 그 너머의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알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머리 속 수많은 고뇌와 고민, 무언가와의 괴리감 등의 관념들이 대립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말을 하면서 이게 맞는 일인지, 굳이 밝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긴 했었다. 아버지라고 아니지는 아닐 것이기에, 나는 어떠한 보챔도 없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래.... 문경 갔었다.... 간 지는 꽤 됐어...."
"무슨 일로요? 왜 멀쩡한 회사 놔두고...."
"다 이야기 해 주마...."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