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03

by 현재의 선물

이 이야기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약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첫 화를 읽고 오시면 더욱 몰입감있게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박 주임의 계속되는 뜸들임에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다 못해 상주에서 접한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이야기라도 해야 겨우 그 속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박 주임은 말을 하려다가도 약간의 고뇌와 불안이 뒤섞인 말투로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계장님, 지난 번에 가족 사진 새로 찍으셨다고 저에게 사진 보여주신 적 있으시잖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몇 달 전 박 주임에게 사진관에 찾아가 복순이까지 온 가족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기억이 났다. 그리고 덧붙여 그 사진까지 보여주며 칭찬을 받았던 것까지 어렴풋하지만 분명하게 상기됐다.


"그때, 가족분들이 너무 화목해 보인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때 유난히 어머님하고 아버님의 얼굴이 워낙 인상적이었어서 제가 기억하고 있거든요."


나는 칭찬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얘기가 나온 걸로 봐서 심상치 않은 일임을 직감했고, 계속 말을 이어 보라고 지시했다.


"하필 엊그제 상주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갔습니다. 아시죠, 계장님 댁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거. 그래서 회사에 아침 일찍 들렀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계장님 아버님을 뵌 거에요. 처음에는 '누구였더라?' 하며 생각이 안 났는데, 마침 계장님이 보여주셨던 가족 사진이 생각나서 아버님인걸 그제서야 알았죠. 아무튼,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버님이 저를 못 알아보시더라구요. 당연히 얼굴을 본 적 없으니 그러셨겠지만, 저는 편하게 갈 수 있어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찌됐든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니 제가 탈 16-1번 버스가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16-1번 버스는 시골 방향으로 가서, 중간에 상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자 했죠. 아버님도 같이 타시길래 가시나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갈아탈 정류장에서 내리는데, 아버님도 같이 내리시는 겁니다. 사실 그 정류장이 상주로 가는 버스 한 대만 지나가는 외진 정류장이라, 도통 사람들이 잘 안 내리거든요."


나는 박 주임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이 귀에 박혔다. 특히 아버지 얘기가 나올 때면 그 강도가 더욱 세졌다. 나는 아버지가 정류장에서 내린 얘기까지 듣고, 박 주임이 더 언급하려 하자 그만 말을 끊었다. 박 주임은 그게 내가 진정할 시간을 달라는 무언의 신호임을 알아채고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나는 다시 박 주임에게 얘기했다.


"계속 해주게."


"네.... 아버님은 그렇게 다시 저와 같은 버스를 탔습니다. 상주행 버스를요. 하지만 이번엔 아버님이 저한테 말을 거시더라고요. 아마 전에서부터 같이 온 걸 아신건지, 아니면 버스 안에 사람이 통 없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출장가나?"


"예. 상주로 갑니다."


"일터는? 서울이고?"


"예. 서울에서 출판업 주임하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 아들도 출판사 다닌다."


"그러세요? 그런데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나는 뭐.... 문경. 문경읍."


"근데 문경은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절대 니만 알고 있어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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