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이 없어도 별은 뜨나니

#02

by 현재의 선물

이 이야기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약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첫 화를 읽고 오시면 더욱 몰입감있게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느닷없이 16-1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육중하고도 건장한 그 체격이 갑작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것이 모순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버스에 탔다. 아버지는 주변을 힐끔거리는 듯 하더니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버스 뒷자리 구석에 몸을 가눈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다. 11번 버스가 떠나고 16-1번, 17번 버스까지. 나는 무슨 일인지 궁금할 겨를도 없이 우선 일터로 향했다.


집 앞 버스 정류소에서 일터까지 오 분이 채 될까한데, 그 사이 얼마나 수많은 생각과 잡념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옛날에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암산 천재 이모양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빠른 산수를 한 것이 지금에서야 가능할 수 있겠다고 짐작할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회사 가려면 17번을 꼭 타야하는데, 이번엔 왜 안 타신거지? 게다가 너무 자연스럽고, 되려 "왜 이 버스에 타셨나요?"라고 묻는 것이 더 어색할 정도인데.... 혹시 회사에서 잘리신 건가? 그럼 아버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근데 그럼 버스를 타고 갈 이유가 없잖아. 굳이 가족들한테 숨길 이유가 있나? 아니면 다른 회사에 취업해서 길이 바뀌었나? 근데 또, 16-1번 버스는 회사 단지 방향이 아니고 완전 시골 방향으로 가는데... 정말 무슨 일이 생기셨나? 어쩐지 며칠 전서부터 괜히 눈 아래가 좀 어두컴컴하신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긴 했는데, 이제 우리 가족은 어떡하지? 복순이와 난 이제 서로 떨어져 지내야 하나. 정말 복날에 담가 먹는 거 아니야? 어머니는 또 어떻고. 집에서 하루 왠종일 보내시는데. 아휴.... 갑자기 뉴스 단신에 "서울 가정집... 가족 전체 아사"라고 나오는 꼴도 못보는 거 아니야...?'


'일단 오늘 집에 가서 생각해 보자. 아버지가 그렇게 태연하게 타신 걸 보면 아마 하루 이틀은 아닐 거야. 분명히 오늘 집에 들어 오실테니, 그때 진지하게 말씀드려 봐야지. 그냥 회사 옮긴 걸로 끝나거나 잘못 탄 것이면 다행이겠지만.'


일터에 도착하자 친한 동료인 박 주임이 나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건넸다.


"고 계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저는 한동안 얼굴을 못 뵀더니 너무 심심하더라고요."


"그래, 잘 있었어. 자네 출장 갔다온 사람 치고는 얼굴이 좀 폈네."


"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자연 경관을 즐기다 왔습죠!"


"근데 출장 갔다 왔으면 뭐라도 좀..., 이게 딱 하고 놓는게 뭐랄까... 그런거...."


"아! 그럴 줄 알고 거기 특산품으로 준비했습니다."


박 주임은 자기 자리 밑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끈을 푸는 소리와 동시에 박 주임의 두 손에 묵직한 상자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피니 홍시색의 불그스름한 포장 상자였다. 크기는 자그마한 서랍장의 절반 정도 되었으며, 받아 들었을 때 어렴풋이 한 근은 되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열어보십쇼!"


그 안에는 검은색이 곳곳에 묻어 있는 잘 익은 곶감들이 들어있었다. 박 주임이 출장갈 때, 상주시의 곶감이 유명하다고는 했었는데, 설마 뻔하게 곶감을 사오겠어라고 생각할 게 아니었다. 아무튼 곶감은 탐스럽고 진해 보이는 것이 먹음직스러웠다.


"아이고, 잘 먹을게! 하하.... 근데 나만 줘도 돼?"


"괜찮아요! 오는 대로 하나씩 돌릴 겁니다. 근데 사실 계장님 건 몇 개 더 들어있습니다. 많이 드시고 건강 좀 챙기시라고. 게다가 옛말에 이 곶감을 먹으면 지나가던 호랑이도 알아보고 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우 좋답니다."


나는 박 주임의 썰렁한 농담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던 내 머리가 조금은 정리된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근데 고 계장님, 이거 말씀 드려도 되나 모르겠는데...."


"무슨?"


박 주임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말했고, 나도 괜히 움츠리며 긴장했다.


"제가 상주 갔을 때, 좀 놀란 일이 있었는데...."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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