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의 공존

특별함을 틀림으로 보지 않기까지

by OurSlowBlooms


나는 네잎클로버를 유난히 잘 찾는다.

친구들이 한참을 들여다봐도 못 찾는 것을

몇 분 만에 툭 하고 발견하곤 했다.


사람들은 세잎클로버와 다른

식물학적 기형에서 발생한 네잎클로버를

‘행운’이라 부르며 좋아한다.


흠이라기보단, 귀한 존재.

보기 드물기에 더 특별하고,

다르기에 오히려 사랑받는 잎 하나.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런 특별함을 행운으로 보고 있을까?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인공수정을 했는데

한꺼번에 아들 셋을 주셨다.


그 중 한 첫째는 중증 자폐 진단을 받았고,

셋째는 경계성 지능을 의심하고 있다.

그 사이에 끼어 있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둘째.


세 아이 모두가 저에게는 특별하고 사랑스럽지만

모두 코로나 세대라 사회성도 부족하고

다른 부모들이 보기에는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길에서

나의 취미인 네잎클로버 찾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형이지만 행운으로 불리는 네잎클로버처럼

우리 아이들도 어딘가 부족하거나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조용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로

천천히 행운이 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처음엔 아이들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다름’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평범함을 욕망하며

아이들을 심하게 질책하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깨닫게 되었다.


공존이란, 다른 잎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모양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걸.


특별한 잎 하나가 있다고 해서

세잎들이 덜 아름다운 건 아니고,

그 하나가 튀어 보인다고 해서

그 존재가 틀린 것도 아니다.


공존은 그렇게 시작된다.

서로의 다름을 보듬는 눈으로,

틀림이 아니라 다양함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는 매일 바쁘고, 육체적으로도 고되지만

불행하지 않다.

평범하게

꽃을 꽂고, 흙을 만지고, 아이들의 웃음을 듣는

이 평범하고도 특별한 일상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그리고 우리 가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는 안다.

세잎 사이에서 피어난 네잎클로버처럼

다름은 흠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네잎클로버를 보며 공존을 생각해보았다.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었다면,

당신의 응원이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our.slowblo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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