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소란
받은 만큼 일할 뿐, 저는 도구가 아닙니다.
인터뷰. 태린-벨라
아홉 번째 소란의 주인공 벨라는 고등학교에 재학할 때부터 24세인 현재까지 매우 다양한 유형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해 왔다. 단순 나열만 해도 3박 4일 정도가 걸릴 것 같은 그의 경험담을 들어 보았다.
- 안녕하세요, 프로젝트 “소란”의 태린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 경험 6년차, 지금은 대학교에 재학 중인 벨라입니다.”
- 고등학생이실 때부터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들을 경험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간단하게 지금까지 해 오신 일들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 시작은 간단한 홀 서빙이었습니다. 감자탕집 ,갈비집 ,낙지집 등이었어요. 대학생이 된 후에는 패스트푸드점, 놀이공원, 피시방, 블록 키즈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한의원, 치과병원에서 일을 했고, 전공 살려서 청소년 멘토링도 했고요.”
-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시기는 언제이고,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이고요.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게 무섭기도 했지만, 제가 스스로 돈을 벌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알바를 구했던 것 같아요.”
- 가장 처음으로 한 알바는 어떤 거였나요?
“첫 알바는 감자탕집 홀서빙이었어요. 두 달 정도 했던 것 같고. 주말 내내 했었거든요. 주말이 없다는 생각에 오래 안 하고 그만두게 됐어요. 아무래도 첫 알바라서 실수한 적도 많았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 전이라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학생 때여서 그런지 사장님이 되게 잘 해주셨었고. 밥도 잘 챙겨 주셨어요. 그래서 첫 알바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아 있어요.”
- 떠오르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처음 갈비집 알바를 할 때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시급이 5천 얼마였던것 같은데… 일의 강도를 떠올리면 한 9천원은 받았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숯불을 직접 테이블에 넣어드리는 일도 가끔 했는데, 혹시나 어린 손님들이 다칠까 싶어 정말 조심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일 끝난 후 집에 가면 온 몸과 옷에 냄새가 나서 입었던 옷을 매일 빨았던 기억이 납니다.”
- 또 다른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나요?
“조금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요. 첫 알바를 했던 곳과는 다른 감자탕집에서 일을 할 때였어요. 주말 점심 때여서 정말 바쁜 시간이었고, 정신없이 여러 테이블을 돌아다니다가 한 테이블에 갔는데요. 중년 남성 분들이 회식을 오신 것 같았어요. 갑자기 저한테 ‘여기 테이블에 수저 세팅 좀 해 줘’ 하시더라고요. 휴지 깔고 그 위에 수저를 놓으라고. 그게 제가 할 일은 아니잖아요. 너무 황당했는데… 지금 바빠서 안 된다고 말만 하고 바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한정식집으로 생각하신 건지… 어이가 없었어서 아직도 기억이 나요.”
- 제일 힘들었던 일은 뭐였나요?
“제일 힘들었던 건… 무더운 여름에 했던 갈비집 알바였고요.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놀이공원 단기 알바를 할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했던 일 특성 상 분장을 해야 했습니다. 여름에 얼굴 분장까지 하니 찝찝하기도 했고, 야외에서 활동했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쉬는 시간도 따로 없었어요. 휴식 공간도 마땅치 않아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쉬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임금체불도 있었는데… 일을 할 때는 돈을 덜 받았다는 걸 인지 못 하고 있었거든요. 일단 최저시급으로 계산을 했을 때 월급은 제대로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야간수당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걸 안 줬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정확하게 설명을 해 주지도 않고 돈이 갑자기 2년 뒤 어느 날에 들어왔어요. 다른 문제가 터져서, 그거 해결하다가 예전에 근무했던 알바생들한테 체불된 임금을 그때서야 준 거죠. 사실 아직도 그게 무슨 돈인지 잘 모르겠어요. 비정규직 단기로 일을 하다 보면 어떤 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 할 때 힘들긴 했지만, 놀러 오신 고객들이 재밌어하고 즐거워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힘을 받았죠.”
- 10대, 20대 여성으로서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으신 부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가장 많이 느낀 게 PC방에서 일할 때인데요. 밤 시간에 근무해서 학생들보다는 아저씨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손님들의 성함을 제가 직접 입력해야 하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그래서 들어오시는 분들은 저한테 성함을 말씀해 주셔야 했어요. 늦은 저녁이었던 것 같은데, 한 남성분이 입구를 빠르게 지나가셨어요. 저는 이름을 입력해야 하니까 급하게 그 분을 잡았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표정이 안 좋아지시더니 ‘아휴, 아직도 몰라?’ 라고 하시더라구요. 근무한지 3주쯤 됐을 때였거든요. 거의 비슷한 나이, 비슷한 차림새의 40~50대 남성분들이라 구분이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잔돈을 던지거나 반말을 하는 경우가 되게 많았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갔던 기억이 나요. 다른 남자 알바생들한테도 그렇게 했는지 궁금하네요.”
-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다른 어려움이 있나요?
“스무 살 때 식당 홀 서빙을 하면서 있었던 일인데요. 저만 아르바이트생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규직 직원이었어요. 원년 멤버들이라고 할까요. 어느 날 주문 들어간 메뉴와 완성된 메뉴가 달랐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사장님이 주방장님께 가서 얘기를 했죠. 그런데 갑자기 주방장님이 저를 가르키면서, 쟤가 주문을 받았다고 말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확실하게 주문을 안 받았거든요. 놀라서 아니라고 말하기는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직원이라 말을 못 하는 건가? 이제 막 시작한 알바생인 저한테, 만만하니까 책임을 넘기는 건가 싶어서 좀 속상했어요. 또 한의원에서 카운터랑 진료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거든요. 동네 한의원이라 그렇게 큰 곳은 아니었어서 아르바이트생은 저밖에 없었는데. 저는 분명히 진료보조랑 카운터 보는 일을 하는 걸로 고용이 됐는데, 계속 청소를 시키시더라고요. 전날 원장님이랑 사모님이 드시고 안 치우고 가신 설거지를 제가 하고. 복도 청소를 하라고 하셔서 수세미랑 솔로 복도를 몇 시간동안 청소했던 기억이 나요. 청소 업무를 하러 온 게 아니었는데…”
- 그럼 제일 좋았던 알바는 어떤 거였나요?
“시험 감독 알바였어요. 일단 사전 교육 시간까지 알바 시간에 포함이 됐다는 게 좋았어요. 일도 그냥 주의사항 안내하고, 시험지 나눠주는 게 전부였어서 편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한국장학재단에서 하는 교육근로도 좋았어요. 일단 시급이 만 원이 넘고요. 중도휴학을 하지 않는 이상 1년동안 꾸준하게 할 수 있고, 근무일도 협의해서 정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었어요. 아이들이랑 같이 공부하고 놀았던 게 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한동안 출근을 못 해서 오랜만에 갔던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기다렸다고, 보고 싶었다고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는데 고마웠어요. 또 치과병원에서도 꽤 오래 일을 했어요. 진료 도구를 준비해서 챙겨 드리거나, 소독실에서 진료도구를 멸균하는 업무를 했어요. 주5일 8시간 직장인처럼 일하는 시스템이라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또 관련 학과 전공생도 아니다 보니까 진료도구들 이름도 잘 못 외웠고, 그럴 때는 주눅들기도 했고… 그런데 주변 선생님들이 헷갈리는 게 당연하다, 천천히 하면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힘이 많이 됐고. 일을 할 땐 잘 먹어야 된다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 주셔서 그 때 살이 많이 찌기도 했고요… 근무 마지막 날에는 고생했다고, 선물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너무 감사하고 그만두는 게 아쉬웠던 기억이 나요.”
- 소중한 경험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은 사장님과 동료들 그리고 손님을 접했어요.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고 느꼈어요. 그 분들로 인해서 받은 상처들로 주눅들고 자책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더 단단해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갈비집 알바… 2014년 최저시급이 5210원이었는데 솔직히 그건 9천원은 받았어야 했어요. 다시 생각하니까 빡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