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 온 야릇한 감흥.
카톡 알람이 와있다.
브런치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전송하는 글 공지다.
글을 읽던 나는 점점 더 아내를 존경하게 됐다.
회사 점심시간이면 몰리는 인원 덕분에 구내식당은 입구에서부터 인산인해다. 어느 때 보다 빠릿빠릿하게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었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쩜 그리도 날렵한지들. 업무 시간의 느긋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A와 B 메뉴를 확인하는 눈빛에선 회의 시간엔 여간해선 볼 수 없었던 고뇌의 모습이 역력하다.
어느새 기다랗게 늘어선 줄.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3층에서 지하까지의 거리는 무척 애매하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만원이고 계단은 층을 내려갈수록 속도가 더뎌진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5분 정도는 자연스레 줄 서는 시간이 된다. 아. 2층에서 근무하고 싶다.
기다리는 5분의 시간. 업무 시간에 그리도 즐겼던 멍 때리기를 이 순간만큼은 할 수가 없다. 왜 그런지 줄을 서 있는 동안은 사람이 참 생산적인 모드로 들어간다. 줄의 꼬리를 물며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간 찾은 가장 생산적인 활동은 읽는 행위다. 뉴스를 보거나 브런치를 읽는 것인데, 이것저것 올라오는 대로 읽다 보면 어느새 줄의 끝에서 식판을 잡고 서게 된다. 시간 순삭이라기 보단 시간을 알차게 채우는 느낌이랄까.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스마트폰을 보려는데 카톡 알람이 와 있었다. 브런치에서 보낸 글. 육아휴직을 함께 한 공무원 커플의 첫 육아에 대한 글이었다. 첫 아이 때의 어려움과 다양한 에피소드가 드문드문 떠오르게 하는 재미난 표현과 따뜻한 사진에 제법 긴 글을 무리 없이 읽어 나갔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그 글의 부분 부분에서 코웃음을 치거나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정말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니다. 그저 네 아이를 혼자 돌보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나왔던 반응이었다. 어쩔 수 없는 비교였다. 어른 2명 + 아이 1명 VS 어른 1.3명 + 아이 4명. 솔직히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다. 아내에 대한 부심이 불현듯 다시 떠오르며 그녀의 대단함에 나를 살짝 얹혀 싸잡아 자찬도 했다. "우린, 참 대단해" 비록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은 없지만...
그렇게 코를 닦아가며 글을 읽던 중, 부부가 육아휴직을 함께해서 돌보는 아이 하나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그동안 네 아이를 돌본 아내는 어땠을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음이 점점 경건한 쪽으로 흘러가고야 말았다. 철없는 부심이 존경의 마음으로 급격히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네 아이의 육아.
부지런하고 우유부단한 천성으로 아이를 돌봤던 아내다. 나름 도와준다고 칼퇴근을 하고 주말이면 밤 수유를 담당하기도 했지만 4번의 제왕절개와 7년간의 밤중 수유를 지속해온 아내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이 됐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가정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걱정을 없애 줬다거나 퇴근 후 항상 집으로만 향했던 것도 아니다. 월급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때가 되면 생겨나는 술자리를 즐겼으며 일이라는 명분 하에 1~2주간의 출장으로 심신을 챙기기도 했다. 그에 반해 아내는 집에서 블로그 일로 생계를 보태고,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을 위해 라면도 끓여 주었으며, 출장길에 사 온 조그마한 초콜릿엔 환한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아. 쓰다 보니 자꾸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온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오버인 줄 알면서도 자꾸 눈이 뜨거워지려 한다. 분명히 나에게 육아 스트레스를 푼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거 큰일이다. 조금 덜 미안하게 기록이라도 해둘 걸.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이 안타깝긴 하지만, 덕분에 아내의 보석 같은 가치를 깨닫게 된다. 팍팍한 세상에서 팍팍하게 살지 않는 아내 덕분에, 오늘도 팍팍하게 굳어가려는 스펀지 같은 마음에 물 한 줌 끼얹어 본다. 고맙다. 아내도, 글을 써준 작가분도, 보내준 브런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