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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Apr 13. 2020

아내는 아프고 나도 힘든데 왜 웃고 있는 건가...

뽀뽀도 못하는데 다섯째가 생길 것 같은 요즘이다.

| 벌어야 하는 나를 제외하고 가족 모두가 극단의 사회적 거리두기. 일명 집콕을 실시하고 있다. 

|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는 코로나의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알지 못했던 희망을 엿본다.




왕관을 쓰고 찾아온 그 녀석 덕분에 세상이 많이도 변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악수는 더 이상 적의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위협이 되어버렸다. 아플 때나 사용하던 체온계가 출근길에 나를 반기고 회사 식당 테이블에는 칸막이가 설치됐다. 의심과 불안인지 확신과 안심인지 모를 간극으로 사람들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다소 번거롭고 불편해도 괜찮았다. 원래 그랬던 것 마냥 사람들의 협조는 기대 이상이었다. 열이 나면 회사를 나오지 않았고 엘리베이터 바닥에 나눠진 칸이 비어있지 않으면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좋아하던 술자리는 집에서의 반주로 바뀌었고 가족들과 부대끼는 시간이 길어지며 가정에서의 질서도 생겨났다. 나가 놀 수 없는 아이들과의 타협으로 가상의 자연에서 생활할 수 있는 '동물의 숲' 게임을 허용한다거나 술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유명한 맛집의 안주를 마련한다거나 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 아내가 아프다. 


젊을 때만 해도 아프다는 말은 몸에 "잠깐"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였는데 나이가 드니 몸이 약해진다는 의미 같아 조금 꺼림칙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겪은 증상들이 잊힐 만하면 나타나서 괴롭히니 이제는 예사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뻐근한 허리, 종종 찾아오는 관절의 뜨끈함, 삐걱대는 어깨. 젊은 시절 근거 없던 "괜찮겠지..!!"가 이제는 "괜찮겠지???????????????"라는 현실적 걱정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아내가 하루 걸러 하루, 이상 증상을 호소하니 내 걱정은 나와 아내를 오가며 쉬질 못하고 있다.


처음 호소한 증상은 답답함이다. 숨이 답답하고 가슴께가 막힌 느낌이라고 했다. 두어 곳의 내과를 다녀왔는데 진단도 달랐고 효과도 없었다. 결국 스스로 역류성 식도염 같다는 판단으로 약을 처방받아 다소나마 괜찮아졌다. 이래저래 넘겨짚었던 의사들의 면이 많이 깎인 사건이다. 그리고 나의 진단은 달랐는데 나는 아내의 답답함을 "시계"가 어긋난 불협화음으로 봤다.


나의 진단은 이랬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한 괌 여행을 코로나 사태로 취소하고 지금쯤 괌에 있어야 할 아내의 심신이 집안에 있게 된 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아내의 마음이 강제로 제압되어 답답함이 생긴 게 분명했다. 네 아이가 어느 정도 말은 알아듣게 되면서 큰 맘먹고 준비한 여행이 취소되었으니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에겐 알게 모르게 큰 서운함으로 다가왔을 거다. 모시고 가기로 한 양가의 어머님과 어린 네 아이에 대한 걱정을 막대한 취소 수수료로 막으며 으레 형식적인 웃음을 흘린 우리에겐 맘 속 저 깊은 곳에 그런 답답함이 있었다.


| 아내가 자꾸 아프다.


이어서 나타난 증상은 팔의 통증이다. 어언 두 달. 아이들과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시간 동안 아내는 펜션 주인이자 식당 주인이 되었고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안하무인의 무전취식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식사를 차리고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면 또다시 밥시간이 되는 시간 순삭의 두 달을 겪으며 아내의 몸은 차츰 말라갔다. 그렇게 고민이던 체중감량을 뜻하지 않게 이뤄냈다며 배시시 웃는 아내. 같이 웃어보지만 끝 맛이 어째 씁쓸하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고 했던가. 극단의 노동력과 체중을 내어주고 아내는 팔에 염증을 들여 앉혔다. 하루 세끼만 해도 벅찰 것을 끼니때마다 후식 제공에 일일 교사도 병행하며 몸을 혹사시키니 결국 몸이 부분 파업을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팔 쓰지 마"  말과 마음뿐이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내의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고 결국 한계에 다다라 버렸다. 한 날, 괜찮냐고 물으며 아내의 팔을 툭 치는데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팔을 부여잡는 것이다. 덩달아 나도 놀라 그리 크지도 않은 눈이 같이 동그래졌다. 괜찮다는 의미가 "(그렇게 전혀 아프지 않을 정도로라도 툭 치치만 않으면) 괜찮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팔을 부여잡곤 다급하게 괜찮다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엄포를 놨다. "절대 움직이지 마, 내가 다 할 테니까 오른팔은 절대 쓰지 마!!" 매일같이 아이들 반찬과 남편 반찬을 따로 만드는 아내를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섯 식구의 설거지를 매일 하면서도 요령 피울 생각도 없이 있는 그릇 없는 그릇 다 꺼내 가족에게 대접하는 것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나라면 저러지 못할 터인데 어찌 저리 태연하게 저 번거로운 걸 마다하지 않고 해내는지 경이로울 정도였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헌신적인 그녀의 속 깊은 마음이 내게 깊은 속상함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이가 둘 밖에(?) 없을 때, 얼마 되지도 않는 설거지를 한 시간 넘게 하고 며칠간 습진으로 고생하는 모습에 질려버린 아내가 도맡아 하던 설거지. 그 어려운 것을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내뱉은 말이 주워 담기지 못하고 내 손에 고무장갑을 끼우고 내 팔을 움직이고 있는 거다. 역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건 조심해서 들고 다녔어야 했는데, 입이 방정이다. "절대 설거지하지 마! 일회용 그릇 써!!" 이런 멋진 말을 하지 못했다니. 마이 미스테이크.


느려 터진 손과 없는 요령으로 설거지는 한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자연스레 등이 뻐근하고 다리가 저렸다. 1주일 정도 되니 아내가 겪은 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거의 하루 종일 손목을 비틀며 닦는 동작에 아래 팔근육이 성할리 없어 보였다. 어느 정도라면 근육이 붙을 동작이 쉼 없는 반복에 파열될 법하다. 아무튼 뭐든 지나치면 독이긴 한가보다. 아내의 가사도 나의 입방정도.


절대 건들지 말고 쌓아 두라는 당부 반 협박 반에 퇴근해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 설거지하는 것이 주된 일이 되었다. 다행인 건 여전히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조금씩 요령이 생겼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그 부담스럽고 두려웠던 설거지도 자꾸 하다 보니 만만해졌다는 사실이다. 요즘 고무장갑이 좋은지 습진도 없다. 극한의 두려움을 이겨낸 것 같은 느낌, 다른 어떤 것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마저 든다. "띠링! 설거지 기술을 습득하였습니다." 나. 한 단계 성장한 것인가?


| 현관문에 음식이 자꾸 걸린다.


네 아이를 돌보고 있는 상황을 잘 아는 주변 지인들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 자신들도 이래저래 힘든 시간일 텐데 이렇게 또 챙기고 나선다. 하는 김에 조금 더 했다느니 둘도 힘든데 오죽하겠나 싶었다느니 말도 참 예쁘다. 평소 수다스럽던 아주머니들의 모습에서 가벼움을 생각했던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것은 가벼움이 아닌 활짝 열림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들의 눈부심에 내가 잠시 색안경을 꼈었나 보다.


덕분에 아내는 오늘도 바쁘다. 아이들의 빵을 굽다가 6층 식구들 분량을 따로 챙기고 치즈케이크 몇 판을 굽더니 여기저기 배달을 갔다 온단다. 이게 상부상조인지 고통분담인지 배틀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얼굴에 띈 미소를 보면 그래도 아픈 팔 걱정보단 꽉 차있을 아내의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 어려울 때 알게 되는 것들


생각해보면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이 몹쓸 질병이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상황들을 만들어 냈다. 극도의 위생관리로 처음으로 독감 없는 환절기를 보내게 했고 아내가 입이 마르게 칭찬하던 이웃들은 더 이상 뭐라고 칭찬해야 할지도 모르게 만들었다. 아내는 무전취식자들을 극진히 돌보며 한계 없는 사랑을 또다시 증명했고 아내를 위해 죽도록 싫어하던 설거지를 할 수도 있는 츤데레의 면모가 내게 있음을 보여주게 만들었다. 덕분에 요즘 주고받는 시선도 좀 더 끈적해졌는데, 다섯째는 안된다더니... 살짝 긴장.


요 근래 들어 퇴근해서 주방을 살피면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처방받은 약이 효과가 있는지 또 꿈쩍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모지리. 이럴 때 남편 좀 부려먹어도 될 것을 하여간 미련스럽다.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저녁상이 다시 Too Much로 향해가고 있다. 좋은 신호임이 분명한데 나는 왜 이리 불안한지 모를 일이다. 집안에 둔 보물을 생각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하. (명심하자. 아내가 보고 있다.)


어려울 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1층의 매력이라던가 굳이 어린이집을 가지 않아도 집을 어린이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네 아이라던가 아픈 팔을 주무르며 하루 세끼를 불평도 없이 해내는 아내의 대단함. 그리고 부족하지만, 싫다면서도 하고 있는 내 안의 지극히 조그마한 사랑 같은 것들.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그 속에서 알게 되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데 자꾸 서로를 안아주며 토닥이게 되는 이상한 상황 속에서, 머지않아 화창한 어느 날, 푸르른 나무 밑, 반팔을 입은 사람들 틈에 앉아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를 듣는 모습을 떠올린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더 단단해져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너무나도 당연했던 그 모습이 식지 않게 희망의 군불을 지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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