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질문에 셋째가 제 엄마를 말똥말똥 쳐다봤다. 아내는 그런 아이에게 흐뭇한 미소를 띠고는 자문자답을 이어갔다.
"얼.굴.천.재."
아내의 도치맘 멘트에 순간 뜨악을 금치 못했다. 때마침 삼키고 있던 사골국이 어렵사리 목구멍을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컥 소리를 내며 숨을 토했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 목을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닮긴 닮았는데 신기하게 잘 생겼어...."
아내는 혼잣말 치고는 제법 큰 목소리로 말하며 내 얼굴과 아들 얼굴을 번갈아 봤다. 순간 멍해졌다. 그것이 기분 좋아야 할 말인지 나빠야 할 말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빠와 아들... 닮'긴'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아들은) 잘 생겼다... 아, 말에 악센트를 주고 생략된 주어를 넣어 보니 확실해진다. 삐져야 할 타이밍이구나...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 후두부를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또 달달한 대화가 들렸다.
"어? 아들 얼굴에 김 묻었네..."
아들이 조막손을 올려 얼굴 여기저기를 문질렀다. 그리고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듯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며 엄마를 바라봤다.
"아직 묻어 있는데~ 여기 여기. 잘.생.김.이 묻었네요~" (까르르르)
다시 한 번 얼굴을 몇 번 문지르던 아이가 궁금증 가득 담긴 얼굴로 물었다.
"......나 김 먹었어요?"
"악~ 귀여워~" (더 까르르르르)
아내의 행복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 나왔다. 어리둥절하던 아들은 엄마의 웃음에 '뭔지 몰라도 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다'는 식의 미소를 지었다. 조그마한 아이의 인자한 미소가 좀 멋져 보이는 건 왜인지. '아들은 잘 생겼다'는 기습펀치에 어리둥절하던 나는 삐져야 할 타이밍에 제대로 삐지지도 못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 엄마도 도치맘
아내의 이런 반응을 이해한다. 아니, 나는 반드시 아내를 이해해야만 한다. 한 때 나의 어머니는 나를 한창 잘나가던 배우인 겨울연가의 배용준과 천국의 계단의 권상우를 닮았다고 얘기하며 내가 앉은 자리를 가시방석으로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친누나라는 사람은 어째서인지 화를 내곤 했는데, 분에 못이기는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오기를 부리게 했고 내 입에서 조차 "내는 배용준 닮았다!" 라는 망말이 쏟아져 나오게 했다. 당연하게도 주변 사람들의 표정에선 당황감이 쏟아져 나왔고 몇몇 사람들의 입에선 괜찮은 거 맞냐는 걱정이 쏟아져 나오게도 했다.
남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아들 자랑을 하던 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어머니에게 나는 못나도 잘났고 못해도 잘하는 아이. 그저 최고. 그게 어머니로서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그러니 이해한다. 제 자식은 어느 탑스타 못지않게 멋지고 예쁘다. 커가면서 '웬수'도 되고 '답답이'도 되고 '이놈'도 되고 '저놈'도 되지만 결국 소중한 내 새끼로 수렴하니까.
고슴도치 부모는 일종의 본능인 셈이다. 지금도 그렇고 수십 년 전에도 그러했다. 그 열렬한 팬심에 힘을 얻어 아이는 어른이 되고 또 부모가 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이런 사랑과 믿음은 어쩌면 삶의 가장 커다란 선물이지 싶다.
잠깐, 이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나랑 비교할 것 까지는... 이해하면서도 삐질 수 있는 것을 또 타이밍을 놓쳤다. 아, 갑자기 아들의 잘남을 역설하던 나의 열성팬, 엄마가 보고프다.
최근 통화 내역
다음날 퇴근길에 어머니 목소리를 듣겠다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당연하다는 듯 최근 통화 내역에서 어머니를 찾는데 한참을 내려도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통화 내역이 나오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낭패감을 느끼며 결국 직접 전화번호를 눌러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종종 찾아뵙고 한 번 만나면 수다가 끊이지 않지만 요 근래 연락이 뜸했음을 알게 됐다. 어머니로선 '배용준'의 근황이 궁금할 법도 한데 혹시 방해가 될까 전화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신 덕분이기도 하다. 무심과 배려가 만들어낸 불협화음이다.
통화가 연결되자 노곤함에 긴장감이 베인 목소리가 들렸다.
"눼! 아드님! 무슨 일 있시오?"
네 명의 손자가 돌아가며 아픈 시절에 하루가 멀다 하고 도움을 청했던지라 어머니의 전화 응대 멘트는 구조대원의 그것과 비슷하게 변했다. 지금은 뜸해졌음에도 전화만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하시니 그간 얼마나 긴장 상태에서 지내셨는지 알만했다. 그리고 익숙한 어머니의 멘트는 그간 아들과의 통화내용이 주로 무엇이었는지도 떠올리게 했다. 두 번째 낭패감이 찾아왔다.
"그냥, 전화했지요~"
별 일 없이 걸려온 통화가 시작되자. 어머니 목소리에 긴장감이 빠지며 생기가 들기 시작했다. 일주일 간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았는지 어머니는 웃고 흥분하고 반성하고 또 웃으셨다.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서 20분. 끊이지 않고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 막바지에 안부 전화가 뜸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으레 하시던 말씀을 하셨다.
내는 됐시오. 가족이나 챙기소!
당신도 내 가족임에도 매번 이렇게 얘기하신다. 나도 내 새끼가 먼저였으니 너도 네 새끼 먼저 생각하라는 어머니. 나는 이 아이러니한 멘트 앞에서 언제나 내리사랑을 생각한다. 그리고 죄송함과 동시에 감사함을 느낀다.
▲ 사랑하는 어머니 문구에 조금 숙연해졌다
한 겨울 차가운 날씨에도 열기로 충만한 휴대전화에 깜빡이는 25분 34초. 짧지 않은 통화 시간을 보며 아들과의 통화가 얼마나 고팠을지 짐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더듬으며 조금 쓴 미소를 지었다.
집에 들어서니 또 달달한 대화가 들렸다. 열혈 팬과의 통화 덕분에 이번엔 헛웃음 대신 미소를 흘렸다. '우리 어무이는 내보고 배용준이라고 했거든~' 차마 입 밖으론 꺼내지 못한 말이 왠지 모를 행복감을 더해줬다. 다소 삐딱하긴 하지만 어머니의 인자함이 조금 전염된 듯했다. 알아 볼 수 없는 글과 그림에 엄지를 세우고 있는 아내와 아들의 좁은 속을 넓혀 주신 어머니. 이렇게 내리사랑은 자식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나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사랑을 더해도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 정도나 되려나. 정리되지 않은 주말 일정에 '어머니 집 방문'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며 떨어지는 빗방울이 조금 굵어지는 착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