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말 한 마디
장모님 댁에 놀러갔다.... 가 일했다. 형님 H가 "남서방~ 언제 시간 돼?"하고 물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외벽의 갈라진 틈을 시멘트로 메우고 페인트칠을 하는 간단한 일이라고 했는데, 모든 일이 그렇듯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기억은 언제나 배신을 일삼는다. 장모님 집 벽이 이렇게 넓었었나? 저녁에 도착했을 땐 몰랐는데 다음날 낮이 되어 망연히 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넉넉하게 샀다고 생각한 페인트 두 통이 너무나 작아 보인다.
더 큰 배신은 몸이다. 잘 챙겨먹고 운동도 꾸준히 했는데, 쌩쌩하던 몸이 주말만 되면 골골한다. 날씨도 배신을 해서는 갑자기 한파를 몰고 와 약을 먹고 좀 괜찮아지려는 몸을 떨게 만든다. 쩝. 별 수 있나. 이미 도착한 몸. 일 속으로 밀어 넣는다.
형님 H가 전날 열과 성을 다해 고기를 구워주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시멘트를 개어서 어떻게 벽에 바르는 지를 설명하는 형님 H의 말투에는 어느새 공사장 감독관의 뉘앙스가 진하게 배어있었다.
"이렇게 떠서, 이렇게 바르면... 어? 떨어지지. 떨어질 수도 있어. 그럼 다시 이렇~~게! 조금만 더 힘을 줘서... 다시 붙이면 돼. 쉽지? 간단해! 할 수 있겠지?"
형님, 또 떨어지는데요. 붙기는 하는 건가요? 그렇게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조금만' 힘을 주면 되나요? 쉬운 거 맞나요? 여러 의문을 뒤로하고 나는 고개를 주억 거렸다. 입은 필요 없다. 몸을 움직여야 끝나는 일이다.
형님 H로부터 미장용 흙손을 받아 들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멘트를 바르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시멘트작업. 호기심이 일으켰던 재미는 추위와 반복 작업에 금세 시들해졌지만 시키면 하고야마는 직장인의 근성으로 감독관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며 진도를 나아갔다.
감독관으로 빙의한 형님 H에게 지시를 받는 한 사람이 더 있었으니, 바로 형님 H의 사촌 형님 K다. 집수리 덕분에 얼굴 본다며 반가워하던 형님 K도 작업자로서 최선을 다해 감독관의 요구에 응했다.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지 뭐."
바람결에 들은 혼잣말은 체념인가 통달인가. 그게 무엇이든 건축업계의 전문가인 형님 K의 결과물은 놀라웠다. 형님 K가 맡은 일은 지난 리모델링에 남은 자재로 외벽을 보강하는 일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이 조금씩 생기를 더해갔다.
형님 H의 진두지휘 아래 오전 작업을 마친 우리는 둘러 앉아 아내가 내온 점심을 함께 먹었다. 메인은 돼지고기를 잔뜩 넣은 김치찌개. 이런 자리에 반주가 빠질 수 없다. 각 일병을 위한 소주 두 병과 무알콜 맥주 하나가 자리했다. 무알콜 맥주에 인상을 찌푸리는 두 형님을 못 본체하며 꿀꺽. 감기 기운이 있음에도 일하느라 몸에 제법 열이 났는지 기분 좋게 시원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몸을 쓰고 나니 모든 게 맛있었다.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며 허겁지겁 밥을 반쯤 먹었을 때, 형님들이 본격적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시작했다. 강원도 사투리로 오가는 대화. 그냥 하는 말들이 뭐가 이렇게 정겨운지.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근래 있었던 일까지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때 이 형이랑 친구 하나하고, 세 명이서 다 같이 해병대가기로 했드랬어. 그런데 엄마가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못 갔잖어. 쩝."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형님 H의 말에 형님 K도 덩달아 아쉬워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랬었지. 그래가지고~ 나 혼자 갔잖어. 해병대. 정신 차리고 보니 혼자 욕먹고 있더라고."
네? 같이 안 간 게 아니고요? 같이 가기로 했던 다른 친구도 집에서 반대해서 못 갔다고 말하며 멋쩍어하는 형님 H와 허탈하게 웃고 있는 형님 K. 같이 가기로 한 군대를, 그것도 해병대를 혼자 다녀왔다니. 갑자기 묘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져 한참을 깔깔거렸다. 내심 억울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 형님 K가 말했다.
"그래도 얻은 게 많아. 덕분에 웬만한 일엔 놀라지도 않어. 꿈쩍도 안하지."
아무렇지 않게 툭 뱉어내는 말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배를 잡고 웃는 와중에도 통찰이 그득하게 담긴 멘트에 심히 공감했다.
그 황당했을 순간을 삶의 거름으로 삼았다는 형님 K는 서글서글한 모습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잘나가던 한 때 건강이 나빠져 시골로 돌아왔지만 형님 K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것'을 지나 '그 덕분에 얻은 것'도 있음을 거듭 되뇌었다.
"그 덕분에 내가 얻은 게 많지."
말하는 중간 중간 "그럼, 즐겁게 살아야지.", "괜찮아. 즐기면 돼~"라며 괜찮지 않은 일을 괜찮은 일로 만들어버리는 혼잣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본받고 싶은 자세였다.
긍정코드를 온 몸에 휘감고 있는 형님 K 덕분에 장모님 집은 예뻐졌고, 덕분에 내 마음도 조금이나마 예뻐졌다. 요즘 일이 없는 '덕분에' 즉흥적으로 거제도로 낚시하러 가기로 했다고 하셨는데 부디 월척을 낚으셨길 바란다.
외벌이에 아이가 넷이다. 본디 계획은 셋이었으나 계획성 없는 아내와 내가 함께 사고를 쳤다. 다시 생각하면 셋을 가진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치기 어렸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덕분에 삶에 긴장감이 한 가득이다. 지루할 틈이 없다.
더 나은 생활을 바라지만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 덕분에 자기합리화 능력이 제법 출중해졌다. 나름 안분지족의 자세를 갖추게 된 것인데, 그 덕분에 가끔 휘청거려도 무릎 꿇는 일은 없다.
사교육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는데 x4를 해야 하는 상황 덕분에 큰 고민 없이 교육관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다.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철마다 격주로 병원에서 링거를 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프지만 마라.'는 양육관이 저절로 생겨났다.
요즘엔 우아한 자세를 유지하며 물밑으론 필사적으로 발을 젓는 오리의 태연한 근면성을 연습하고 있다. 아니라고 해도 대가족인 덕분엔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어 게으른 천성을 꾸역꾸역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자유롭지 못한 직장인인 덕분에 천성을 이겨내고 있어 직장을 구속이 아닌 시스템으로 탈바꿈시켰다.
'덕분에' 한 단어 덕분에 모든 상황이 다행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덕분이면 나쁠 것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진짜 그렇다. 덕분이면 아무리 최악인 상황도 순식간에 반전되고 만다. 사람만이 발휘할 수 있는 신묘한 능력이다.
"덕분에 엄마 집이 훤해졌어. 수고했어. 고마워."
"아닙니다. 덕분에 형님들 얼굴도 보고 좋았습니다."
"팔 아픈 건 괜찮아?"
"아뇨, 그래도 덕분에 전완근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날의 통증 덕분에 요즘 출퇴근 길 내 주머니엔 악력기가 들어 있다. 와, 악력이 이렇게 약할 수가 있나. 겨울인데 땀이 나다니. 덕분에 출퇴근길이 지루하지 않고 따뜻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뭐가 됐든 덕분이고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