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중 의병활동에 투신한 주인공 고애신의 나레이션이다. 드라마 속 배경은 1900년대 초반으로 현재로부터 100년 전의 한반도를 배경으로 하지만, ‘조선'을 ‘헬조선'으로만 바꿔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각과 맞닿을 듯하다. 물론 1900년으로부터 현재까지 지구평균 기온이 약 1℃도 오르면서, 격변의 규모는 인간사회의 정치경제문화를 뛰어넘을 것이란 큰 차이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우선 내가 이러한 기후위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과정부터 되짚어 보고자 한다. 몇년에 걸쳐 서서히 기후위기에 대해 깨닫게 된 시간은 나에게도 큰 충격과 혼란, 놀람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나는 녹색당이라는 막 태어난 작은 정당의 당원이 되었다. 선거권을 가진 후 첫번째 국회의원 선거였고,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 이상의 적극적인 정치행위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던 차였다. 당시는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후쿠시마 핵사고로 각성한 많은 시민들에 의해 일본의 최인접국가이자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밀집 국가인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다. 나도 그 당시 ‘탈핵nuclear phase-out'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어보았다. ‘반핵anti nuclear'은 들어보았으나, 탈핵이란 무슨 뜻일까 호기심을 자극했다. ‘탈핵'이라는 말에서는 핵 에너지의 사용, 핵무기의 사용에 단지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서, 핵산업에 기반한 사회 곳곳의 여러 층위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이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로 넘어가자는 전환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그런 요구를 ‘정치'로 풀어내고자한 열망을 담아 녹색당이 창당된 것이다.
4년 후 나는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총선에 출마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왜 지금 당장 우리 사회에 도입되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기 위해서 선거를 도구 삼았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전국 곳곳에서 녹색의 가치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고민하는 당원들을 만나 큰 영감을 받았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말로만 외치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관계 안에서, 생애 속에서 어떻게 몸으로 살아낼지 참조할 수 있는 살아있는 표본으로서의 동료 시민들이었다. ‘탈조선'이 인기이던 시기에, 한국에 남아 어떻게든 이 곳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바꿔보고 싶은 용기를 얻었다. 선거 내내 받은 지지와 응원에 보답하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라는 대표직에 참여했다.
민중총궐기와 국가폭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시작한 2년 간의 임기는 2017년 5월 조기 대선과 문재인 정부 출범,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위원회를 거쳐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끝으로하여 마치게 되었다. 지방선거 공동선본장을 맡았던 나는 '동네에서 지구까지'라는 슬로건을 걸고, 여성과 청년들이 중심이 된 선거, 성평등한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기획하고 지원했다. 이는 그간 한국의 정치에서 본 적 없던 장면들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기쁨과 설렘, 해방감을 줌으로써 정치 혐오를 걷어낼 수 있는 언어와 실천은 무엇일까 질문하는 과정이었다.
2018년 10월, 녹색당 활동을 일단락 짓고 다시 BIYN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그간의 기본소득 운동을 정리하는 논문을 쓰기로 했다. 2010년대 초반, 청년당사자운동의 부상과 연구자 중심의 기본소득 운동의 틈새에서 시작된 ‘기본소득 청년 운동’이 사회운동의 방법론적 차원에서,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아젠다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보려는 기획이다. 그런데 과거의 활동을 돌아보려 할수록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이 허황된 아이디어에서 진지한 정책 대안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지자체나 NGO, 벤쳐캐피탈 등 다양한 주체들에 의한 파일럿 프로젝트가 실행됐다. 한국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에 대한 공공연한 지지를 표하며 사회수당 형태의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을 도입하기도 했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전 영역에서 각자의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부터는 전지구적 신자유주의의 심화, 오랜 빈곤과 불평등 문제의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이 논의되던 과거와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이 되었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청소년들이 세계 곳곳에서 금요일마다 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영국에서는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 XR)’ 운동이 시작됐다. 한국의 청소년들과 녹색당원들 역시 이러한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위기에 대해 공부하고, 모임을 만들고, 강연을 개최하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2019년 9월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를 조직하러 부지런히 움직이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녹색당 활동에 깊이 참여해온 나조차도 기후위기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6년 총선 각국 녹색당들의 연합인 글로벌 그린스(Global Greens) 2017년 총회의 주요 주제가 기후위기였고, “탈화석연료”를 외치는 슬로건(“Divest from fossil fuels Now!”) 앞에서 다함께 사진도 찍었는데.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평균 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 상황이 문제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1.5도가 넘을 때 돌이킬 수 없어질 기후 파국을 막기 위해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했다고 해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할 숫자들, 개념들, 그래프 이미지들과 고유명사들과 중학교 시간 이후로 처음 접해보는 지구과학 지식들은 돌아서면 금세 잊힌다. 아직 내 것처럼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숫자 만큼은 잊히지가 않는다. 2020년으로부터 10년*. 기후를 제외한 모든 걸 바꾸도록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 지난 활동을 정리하려고 줄곧 2010년의 기억을 되짚고 있는 내게, 10년이란 엊그제처럼 생생히 느껴지는 시간이다. 앞으로의 10년은 어떠할까. 2030년의 우리는 2020년의 우리를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50년의 우리는? 2100년의 우리는?
(*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2018년에 발표한 1.5℃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2100년까지 1.5℃ 제한하기 위해, 10년 후인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CO2 배출량 최소 45% 감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야 2050년까지 전지구 CO2 총 배출량이 0(net zero)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언젠가 도달하게 될 비극적 결과로 저 멀리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깨닫지 못했을 뿐 우리는 매일 이미 와있는 기후위기를 살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적 결단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길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이 “미래세대”가 아닌 현재의 동료시민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미처 소화되지 않은 감각이 멀미를 일으킨다.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는 속도가 일치하지 않을 때 멀미가 나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지각하는 변화와 대기 중 탄소가 쌓여가는 속도가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멀미가 난다.
‘시간'과 관련한 변화 역시 잘 감지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시위를 보면서, 특히 ‘삶의 시간' 즉 ‘미래'가 상상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에 공감한다. 인간으로 치면 체온과 다름없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오르며 다른 식생과 새로운 정상상태를 갖게 될 지구의 미래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지질학적 시간을 과거로 한참 되돌려야만(약 5천만 년 쯤) 우리가 향해가는 미래와 비슷한 기후대를 참고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감각이다. 반면,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는 ‘탄소예산’(1.5℃ 이내로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인류에게 허용된 탄소배출량)의 소비량은 남은 시간으로 계산되어 초단위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 https://climateclock.net/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