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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남매 Oct 22. 2023

네덜란드_시답지 않은 이야기

[유럽] 엄마를 추억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동행이 생길 때가 있다. 

가끔은 마음이 맞아 하루를 함께 보내기도 하지만 친구라고 부를 만큼의 관계를 이어나가기란 힘들었다. 

물론, 제시를 처음 만났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탄자니아 세렝게티에서 만난 그녀는 사파리 투어 가이드를 꿈꾸는 독특한 네덜란드인이었다. 3박 4일을 함께하는 동안 가이드보다 빠르게 숨어있는 동물을 찾아 우리에게 알려주곤 했다. 세렝게티에서는 사자보다 코뿔소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도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투어를 하는 내내 아프리카에 빠진 그녀가 몹시도 궁금했다.

 4개월 만에 만난 제시는 축구로 유명한 아인트호벤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우덴이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제시와 함께 보낼 시간을 위해 그녀의 집으로 미리 라면들과 과자들을 보냈다.

우리가 준비한 과자를 먹던 그녀는 맛동산이 똥처럼 보여 먹기 거북하다고 했다. 그리고 바나나킥을 한입 베어 물면서 건강을 잃을 것만 같은 인공의 맛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제시의 그런 반응들이 신선해 웃음이 났다.     



엄마와 그녀는 20대 초반 처음 만나 30년 넘게 이어져 온 친구 사이였다. 골목골목으로 이뤄진 인천의 어느 동네에서 처음 만난 그녀들은 고만고만한 삶을 살았다. 같은 해, 같은 날, 둘째를 낳았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사는 곳이 달라졌어도 그녀들의 인연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자주 만날 수가 없으니 그녀들은 이삼일에 한 번꼴로 통화했다. 

뭐 하고 있니로 시작해 오늘 저녁은 뭐 해 먹을 거니로 끝나는 그 시답지 않은 전화가 어렸던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때 그녀들의 나이가 되고 나니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소중하단 걸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해관계가 얽힌 사이는 늘었으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사이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5년 전 오늘, 장례식장에서 엄마의 지인들에게 부고 메시지를 보냈다. 부고 메시지를 받고 온 그들은 우리를 보며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아팠던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30년 지기인 그녀에게 조차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고 떠난 친구를 원망하다가도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며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했다. 수십 명의 조문객 사이에서 남겨진 우리도 아닌 홀로 된 아빠도 아닌, 오로지 엄마만을 위해 울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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