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10년이 되었다
요리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는 빙하 타고 내려온 귀여운 아기공룡이었다. 낯선 곳에서 친구도 사귀고, 구박하지만 나름 착한 아저씨가 먹여주고 재워줘도, 1억 년 전 옛날이 그립다. 무엇보다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동그랗고 빨간 코를 가진 도우너는 지구에서 10만 광년 떨어진 깐따비아 별에서 살고 있었다. 바이올린처럼 생긴 타임코스모스를 타고 여행하던 중 고장으로 지구에 불시착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둘리와 도우너는 낯선 고길동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타임코스모스가 과거와 현재를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임을 알게 된 둘리는 도우너에게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부탁했고 마침내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이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푸른빛의 영롱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보니 이곳이 둘리의 고향일 것 같았다.
톱니바퀴처럼 생긴 크램폰을 신고 가이드를 따라 빙하 위를 걷다 보면 새하얀 얼음과 대비되는 푸른빛의 물웅덩이들을 보게 된다. 빙하의 깨진 틈으로 물이 고이면서 연한 푸른빛부터 짙은 푸른빛까지 가지각색의 웅덩이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깊기에 조심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국기가 꽂혀 있는 곳에는 위스키가 준비되어있었다. 컵에 빙하 한 조각을 담고 위스키를 따르고 들이킨다. 가슴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지는 게 금방 술이 올랐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딱딱한 무언가가 명치끝에 늘 머물렀다. 처음엔 단단한 응어리들이 주먹 모양으로 뭉쳐 뾰족한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면 한해 한해 갈수록 뭉친 응어리들은 풀리면서 넓은 면적으로 묵직하게 아팠다.
이 응어리들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다. 네 번의 기일이 지나 배낭을 메고 떠날 결심을 한 그때에도 응어리들은 남이 있었기에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응어리들은 배낭을 메고 떠난 지 5년, 엄마를 보낸 지 10년이 된 후에야 흩어졌다.
늘 억울했다. 왜 하필 우리 엄마였는지,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신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 문득 우리 엄마가 아니여야 하는 이유,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슬픔 속에 매몰되어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었는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