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남매 Oct 22. 2023

크로아티아_나의 킹스랜딩

[유럽] 엄마를 추억하다 

한 달의 칩거 생활을 마치고 우리의 모든 것이 담긴 배낭을 다시 짊어졌다. 

긴 시간 머물렀던 만큼 놓고 가는 것이 없는지 서랍과 침대 밑까지 확인했다. 크로아티아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TV 뒤에 꽂혀 있는 크롬케스트가 떠올랐다. 꼼꼼히 살펴봤는데 놓고 오다니 내 스스로가 바보 같아 화가 났다. 열불 나는 마음과 다르게 창밖으로 보이는 아드리아해는 푸른빛을 띠며 반짝이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곽 안으로 들어오니 마치 킹스랜딩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이곳은 미드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덕후라면 한 번쯤 오고 싶은 도시였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곳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소박했다. 서세이라니스터가 'Shame'을 외치며 걸었던 길도, 산사 스타크가 납치당할뻔한 장소도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TV로 볼 때는 광활하고 웅장해 보였는데 의외였다.



몇 번의 전세 생활을 거친 엄마가 처음으로 장만했던 우리 집은 방 두 개짜리 아파트였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시절이었다고 말할 만큼 엄마에겐 소중한 아파트였고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바라본 6층짜리 아파트는 높아 보였고, 6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단지는 넓어 보였다. 게다가 단지 내 놀이터라니 참으로 멋져 보였다.


놀이터는 우리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기에 일요일이면 아침을 먹고 곧장 달려갔다. 엄마들은 점심시간이 다되어 가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하나둘씩 집으로 잡아갔다.

 어린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놀이터였다면, 엄마들의 핫플레이스는 1층 화단 앞이었다. 그곳에서 엄마는 다리 아픈 것도 잊은 채 서서 몇 시간씩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종종 퇴근하던 아빠가 엄마를 잡아올 만큼 오랫동안 머물렀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우리는 이사를 했고 그 후로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기억 속에 우리 아파트는 어린이의 핫플레이스도 어른들의 핫플레이스도 있는, 6층짜리 높은 아파트이자 6개 동으로 이뤄진 넓은 단지였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결혼한 친구가 신혼집으로 초대하며 주소를 보내줬을 때 25년 만에 그 아파트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파트 주변에는 높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우리의 첫 아파트는 그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경비실도, 놀이터도, 슈퍼도 그대로였지만 자세히 보니 소소하게 바뀌어있었다. 놀이터의 흙은 사라졌으며, 슈퍼 대신 편의점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무엇보다 광활하게 느껴졌던 엄마의 첫 아파트는 주차자리가 협소할 정도록 작고 아담해졌다. 어린 시절의 웅장함을 잃은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예상치 못한 추억과의 만남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전 16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_나의 오렌지 주스는 썬키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