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엄마를 추억하다
셋째에게 유벤투스 유니폼 사줄 때만 해도 이런 선물이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비가 오는 8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지가 될 뻔한 스위스에 도착했다. 젖어가는 신발도 짜증 나고, 엄마와 함께했으면 어땠을까라는 마음에 기분이 좋지 않아 동생들과 말없이 호스텔을 향해 걸었다.
체크인을 하려고 여권을 찾고 있을 때 셋째가 아저씨의 옷을 가리키며 "유벤투스?!"라고 말했다. 재킷 안에 입은 티셔츠에 새겨진 유벤투스 로고를 눈썰미 있게 캐치한 것이다. 아저씨는 셋째를 향해 유벤투스 팬이냐 물었고 셋째는 유니폼도 있다며 조금 뒤에 보여주겠다고 했다. 기분이 좋아진 아저씨는 팬을 만나 기쁘다며 쿨하게 숙박비를 할인해 주셨다. 아저씨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쿨한 선물에 우울했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항상 바쁘고 빠듯했다. 삼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가족이 다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어느덧 우리가 돈을 벌게 되었고 평생 고생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다.
아빠가 환갑이 되는 해에 해외로 가족여행을 간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산을 좋아하는 엄마와 아빠에게 스위스가 제격이라 생각했고 부모님 몰래 셋이 적금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또 아파진 거다. 슬펐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겼는데 억울했다.
엄마가 아프면서 여행을 떠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가 걷지 못할 정도 아픈 게 아닌데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떠나질 못했다. 그러다 항암효과가 있다는 와송을 사러 다섯 식구가 경주 근처로 간 적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경주나 들리자는 엄마의 말에 하루동안 머무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계획 없이 간 경주는 우리의 마지막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