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엄마를 추억하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아프리카 여행도 끝이 났다.
강도를 만나지도 다친 곳도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인지 나미비아에서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탔을 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쌓인 여독을 풀 듯 3일 동안 숙소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더 쉬고 싶었지만 미리 예약해 둔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위해 뮌헨으로 이동했다. 브레겐츠라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 수도인 빈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독일 뮌헨에서 출발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기에 뮌헨으로 떠났다.
2015년 여름 홀로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오게 된 건 기사 속 사진 한 장 덕분이었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서는 매년 7~8월이 되면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중 보덴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야외 수상 오페라는 단연 최고다. 2년 동안 한 작품을 공연하는데, 올해는 ‘투란도트’가 상영된다.
페스티벌을 소개하는 짧은 글 아래에 첨부된 무대 사진을 보니 마음이 설레었다.
밤 9시 30분.
9시 시작인 공연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지연되고 있었다. 취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서성이고 있을 때 다행히 입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나눠준 우비를 입고 자리에 앉았다. 공연이 중반부를 향해가고 있었지만 비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공연을 중단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보지 못한 이 공연을 머지않아 보러 오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아섰는데 오늘 동생들과 함께 이곳에 왔다.
홀로 피자를 먹었던 레스토랑에서 동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혼자 거닐던 호숫가를 동생들과 함께 걸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대신 맑은 하늘엔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투란도트 대신에 카르멘이 무대 위에 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막내가 물개 박수를 쳤다. 주인공 카르멘이 도망치는 장면에서 호수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신나 했다.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해리포터 시리즈가 개봉할 때면 동생들과 함께 영화관에 갔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 한 적은 없었다. 엄마가 좋아할 법한 내용의 영화가 개봉할 때면, 엄마에게 물어보지만 늘 싫다고 하셨다.
퇴근하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니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포스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기대 없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연극 보러 갈까?”
연극을 보는 내내 후회했다. 엄마가 아픈 후로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아픈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연극을 보고 난 후 잘 봤다는 엄마의 말에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재미있고 웃긴 영화나 볼 걸이라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엄마를 떠나보내고 난 뒤 롱런하는 연극 덕분에 매년 거리에서 포스터를 볼 때면 엄마와 함께했던 그날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슬프지만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