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라는 우주를 만나는 삶에 대하여
결혼 계획, 결혼 여부와 더불어 자녀 계획, 자녀 유무에 관한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본인이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먼저 꺼내지 않는 주제다. 2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결혼 10년 차인 친구가 있다. 친구는 내 자녀들의 안부를 물으며 다정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이 주제에 대해 스스로 언급하지 않기에 나 또한 단 한 번도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올해 시도해 볼 예정이고, 잘 되기 위해서 건강관리도 하고 있다고 말이다. 나는 기쁨과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었다.
임신, 출산, 양육의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배려하는 시선을 담아 바라보게 된다. 동시에 거시적으로는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와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국가에서도 세심한 정책입안으로 부모와 예비부모들의 어려움을 덜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국가의 다각도적인 복지정책들을 보며 감탄한다. 임신, 출산, 산후조리과정에서 다양한 금전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아이들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비도 지원해 준다. 일정 나이까지 소액이지만 양육비도 나온다. 독일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지인들의 학비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나라에 감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한국의 경우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비, 인프라가 갖춰지고 직장이 근접한 지역의 치솟는 집값, 비교하는 문화, 사회의 양극화 문제 등이 있다. 특히 직장을 다니면서 양육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아이를 하나만 낳거나 아니면 아예 출산을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내가 국가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낼 생각은 없다. 국가는 한 개인에게 애를 낳아라 마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가끔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면 "엄마가 애국자네"라는 말을 듣는다. 분명 지쳐 보이는 나를 격려하는 칭찬이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불편한 마음이 든다. 나는 국가를 위해서 출산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 개인적인 가족계획이었고 원하는 삶의 모습 중 하나이며 행복을 위한 선택일 뿐입니다,라는 마음의 소리는 속으로만 삼키고 만다.
또한 나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은 기성세대와 상당히 다르다. 부모님 세대는 가족이나 공동체를 위주로 살아가고 한평생 자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셨지만, 자녀 세대는 자신의 삶과 일을 중시하며 성장했다. 게다가 그동안 엄청난 경쟁과 스트레스에 시달렸기 때문에 자녀에게 똑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하고 싶지 않다. 하나나 둘만 키우면서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양육환경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부부끼리만 여유롭게 사는 걸 선택하기도 한다.
아이 셋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분들도 주변에 보이는데, 정말 슈퍼맨 슈퍼우먼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 한 번 데리고 가기도 눈치 보이고, 그게 법정 전염병이라면 일주일 동안 학교를 못 나간다. 도와주시는 분이 없다면 버티기가 힘들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어디에 맡겨야 할지 막막하다. 학원을 여러 군데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이들 학교행사는 대부분 못 가니 속상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쉽지 않은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낸다. 육아휴직 중인 나는 그분들 앞에서는 힘들다는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시각이 얽혀있지만 자녀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경험들을 기점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거대한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으로 넘어간 느낌이다.
출산 전에는 양육비며 나의 경력이며 다가올 미래가 매우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아이를 품에 안게 된 순간 이후에는 경제적 논리나, 나의 일의 방향이나, 그런 현실적인 잣대들을 들이댈 수 없게 된다. 아이 그 자체로 너무 소중해서 어떤 세상의 가치와 이 아이를 비교할 수 없다. 아이만 보이게 되고, 아이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야만 할 것 같다. 앞으로 산적한 문제들은 엄마마랑 아빠가 다 해결할게, 너는 아름다운 꽃길만 걷게 해 줄게,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은 내가 여성이지만 정말로 공감하는 말이다.
나를 통해 나온 이 작은 생명들이 때론 강도 높게 훈련시키는 조교 같기도 하고, 직장 상사나 진상 손님 같을 때도 있다. 때론 나를 쉽게 용서해 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스승 같기도 하고, 어른인 나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이전의 삶이 굉장히 흐릿해진다. 그렇다고 이전의 삶이 그립지는 않다. 이 아이들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고, 상상하기도 싫다. 온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어주고 영생의 삶을 살게 해 준다고 해도 이 아이들과 절대 바꾸지 않는다. 신께 기도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치시려거든 나를 데려가시고 세상의 모든 폭풍우는 내가 맞게 해 주시라고, 대신 아이들은 순조롭게 지나가게 해 주시라고 말이다. 이제 아이들은 나의 심장을 뛰게 하고 나의 영혼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이다.
이렇게 애틋한 마음이 들고 잠자는 얼굴을 바라보며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일상에서는 엄청 귀찮을 때가 많다. 실랑이하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애들을 거실에 내팽개치고 문을 잠근 뒤 이불속에 괴물처럼 숨기도 한다. 흰머리와 주름이 가득하고, 주근깨가 올라온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왜 이러고 살지 하고 울컥하기도 한다. 지쳐서 모든 걸 내려놓고 혼자 도망치고 싶다.
살 것도 많아서 저절로 절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의 본능과 욕구를 누르며 살아야 하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나도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영화도 보고 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싶은데 모든 스케줄은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인간이 일상의 일들을 독립적으로 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매일 느끼고 있다.
두 아이들이 함께 나란히 앉아 놀이를 하는 모습,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을 보면 흐뭇하다. 그 한 장면을 위해 얼마나 많은 비하인드 컷들이 있는지, 흙탕물처럼 올라온 무수한 감정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감각이 무뎌진다. 기쁨과 행복은 덩어리 시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자녀들은 이렇게 복잡 미묘한 존재이다. 무수한 기쁨과 행복, 사랑의 순간을 선사하면서도 고민과 걱정, 불안과 두려움을 안겨주는 원인이기도 한다.
모든 선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중심에 이제는 자녀가 있다. 자녀를 키우느라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머리는 텅 비어 가는 것 같고 경력단절의 의미를 이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있어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목표와 꿈을 새롭게 세우게 되고,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기에 피곤해도 힘을 낸다.
아이들 위주의 각종 업무들로 시간이 빠듯하게 채워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시간을 내보려고 하고, 아이들이 끼어들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지 알기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하며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장점과 어려운 점이 공존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 기본을 지키는 것만 해도 부모가 처음인 우리 모두가 잘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간 아기도 잘 자란다. 전쟁 중에서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든 길러내고 잘 자랐다. 흙 묻은 쪽쪽이를 탁탁 털고 입에 물었어도 잘 자랐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가난했던 시절에도 아이들은 잘 자랐다. 전집이나 국민 장난감이 없어도 주변에 널린 모든 것을 장난감 삼아 코 흘리며 뛰어다녀도 잘 자랐다. 똥 묻은 기저귀를 종일 차고 있어도, 유기농 로션이 없어도 건강하게 잘 자랐다.
오히려 요새는 정보가 너무 많고 부모로서의 합격 수준을 너무 높여 놓는다. 그저 우리는 버티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는 건데 말이다. 그걸 보면 괜히 죄책감이 들어 어느 시점부터는 잘 안 보게 되었다. 나의 경우 나와 가치관이 맞는 조선미 교수님이나 하정훈 전문의, 최은아 선생님의 영상이나 책 정도만 보면서 도움을 받고, 그 외의 필요한 정보들은 책을 사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것들만 발췌독을 하여 실천해보려고 한다.
어려워 보이는 육아 스킬이나 각종 도구들은 아이를 키워보니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있고, 그것들을 채우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들도 행복하다
나는 밥도 제일 먼저 먹고, 샤워도 제일 먼저 하고, 아이가 낮잠이라도 자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잠부터 잔다. 다른 곳에서 비용을 아끼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꼭 매일 사 먹는다.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말에는 나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아이들 챙기느라 자신은 내팽개쳐놓고 밥도 굶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악착같이 챙겨 먹고, 디저트도 마음껏 사 먹어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나고,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내가 먼저 쓰고 자녀를 씌우라고 한다. 내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있어야 그걸 바탕으로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식사를 차리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한 숟갈이라도 더 떠먹이고 아이들의 말에 한 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려면 내가 기분이 일정 수준이상이어야 한다.
멘털관리, 감정관리, 체력관리가 필수이다. 이건 자연스럽게 되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해보고, 체력이 달리면 부족한 대로 할 수 있는 일들만 우선적으로 처리한다. 아침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내 마음을 채우고 하루를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하루 일과를 미리 생각해 보고, 아침밥도 미리 먹는다. 절대 완벽할 필요가 없다. 무질서 속에서 내 나름대로의 질서만 찾으면 될 일이다.
아이들과 24시간 붙어있다 보면 나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위험 신호이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나 자신의 고유의 자아가 살아있어야 행복하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도 성장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행복 십계명을 적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일상의 스케줄이 꼭 집어넣는다든지, 취미활동을 하거나 무언가를 배운다든지, 내 이름 석자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꼭 병행한다. 직장이 있다면 어떻게든 경력을 이어간다. 지인 중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기보다 파트타임으로 전환하여 당분간은 경력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시기가 영원하지 않고 아이들이 크면 내 시간도 많아지기 때문에 지금 가까스로 이어간 나의 작은 경험들이 실력으로 쌓여 빛을 발하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시기가 분명히 올 것이다.
스킨십과 애정 표현은 자주, 진심으로 해준다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플 정도로 꼭 껴안아주고 뽀뽀해 주는 일, 잠을 자기 전 곁을 지키며 토닥여주는 일을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 크게 몸으로 놀아주지 않아도 이 정도만 해줘도 아이들은 애정 배터리를 충전하고 결핍이 오지 않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휴대폰을 하지 않고 아이에게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휴대폰을 가는 곳마다 들고 다니는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즉각 반응, 감정 읽어주기와 같은 지침들이 부모를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할 에너지가 없는데 수다스러운 엄마가 되어야 한단다. 그저 단 한마디를 하더라도 진심으로 반응해 주는 게 중요하다. 자기 전 여러 권의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하더라도 "엄마가 졸리니까 딱 두 권만 읽어줄게"라고 선을 그어주며 부모도 사람이고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게 해 준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해심이 많고, 우리의 단점을 경험하더라도 미안하다고 말하면 용서하고 사랑해 준다.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중요하다
SNS에 소개되는 화려하고 멋진 곳을 방문하지 않아도, 집 앞 도서관이나 공원, 놀이터에서만 놀아도 가족의 관심과 단단한 울타리를 느끼며 해맑고 안정적인 정서를 가진 아이로 성장한다. 도심 가까이에도 자연이 있는 곳이 많은데 간식 좀 싸들고 가서 자연 속에서 뛰놀면 아이들은 너무나 신나 하고 좋아한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무료나 입장료 정도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많다. 다양한 체험을 위해 일일 체험 클래스나 문화센터를 굳이 등록하지 않아도 자연 그대로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친구와 어울리는 법을 부딪히며 배우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 스스로 터득한다. 우리가 프로그램을 일일이 짜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는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알아서 보고, 듣고, 느끼며 성장한다. 우리가 할 일은 질문에 대답해 주고 안전하게 노는지 확인하고, 곁을 지키는 것뿐이다.
전집이나 장난감의 브랜드 역시 중요하지 않다. 사실 돌아보면 아이의 몸과 마음에 해롭지 않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제품이라면 어떤 것을 구입했어도 상관없었다. 그걸 활용해 함께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는 활동 그 자체에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많은 선택지를 놓고 며칠 밤을 고민하던 시간에 차라리 잠이나 더 자고 아이들과 더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걸 하는 걸 깨닫는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
나는 아이의 성격을 규정짓는 어떠한 말이라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아이가 내성적이어서요, " "낯을 가려서요, " "말이 좀 늦어요"와 같은 말들 말이다. 아이마다 속도와 성향이 다른 것이 당연하고, 성장하면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가능성에 한계를 두지 않고 어른의 잣대로 재촉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실수를 허용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게 한다면 아이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행동하며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다.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엎질러진 물을 치우고, 거실이 어지럽혀지고, 책을 찢고 낙서를 해놓는 것을 내버려 두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해가 사랑이다. 아이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일정 수준의 규율과 규칙, 한계를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아이를 믿고 능숙해질 때까지 기다려 준다.
내리사랑임을 알고 시작한다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을 나도 이렇게 위하고 사랑하는데, 갚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님의 사랑은 절대로 갚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랑을 퍼주고, 또 내 자녀는 그들의 자녀에게 사랑을 퍼주는 것이다.
돌려받을 생각도 하지 말고, 내가 이렇게 했는데 너희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서운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사랑을 가득 전해주고 이 아이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우리의 삶에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우리는 아이들에게 추억이 되는 것, 우리의 역할은 그뿐이다.
대신,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이 모든 혜택과 돌봄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예의 없고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는 누리는 것들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일상에서 항상 교육할 필요가 있다.
육아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면 해야 할 도리를 잠시 내려놓고 안 해도 괜찮다
엄마들은 며느리이자 동시에 딸이기도 형제이기도 하다.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육아를 하면서 챙겨야 할 각종 명절과 집안 행사, 지인들과의 만남 등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어질러진 집과 잔뜩 쌓인 그릇과 빨래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가 그렇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챙기는 게 맞다. 내가 참석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섭섭하고 싫은 티를 내는 시어머니의 마음은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미리 여유가 될 때 방문하거나 그것이 안된다면 양해 전화를 드리고 휴가를 떠나거나 집에서 쉬는 게 맞다. 이해를 해준다면 고마운 일이고, 이해를 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기회가 되었을 때 충전하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힘든 건 오롯이 내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여력이 남아있고 기분 좋게 참석할 수 있을 때 함께 한다. 나의 상황에 공감하고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사람이 진정으로 나를 위하고 나의 삶을 응원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