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와 일상인의 사이로 관찰하기
집을 나와 처음 독립했던 곳이 마카오였는데, 당시 교환학생으로 있으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보태 첫 배낭여행을 갔던 곳이 바로 방콕이었다. 저가 항공의 신세계를 맛보고, 정신없는 카오산 로드의 화려한 불빛들 사이로 국적을 알 수 없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로 붐비던 방콕. 회사원이 되고는 여름휴가 기간 동안 다시 이곳을 방문했었고, 시간이 또 흐른 지금, 학생과 사회인의 어중간한 상태로 또다시 태국의 수도를 찾았다.
퇴사를 한 후 사실 21일간 페루와 볼리비아로 여행을 떠났었다.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고자 퇴사 후 다음날, 배낭을 짊어지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때의 여행을 통해 여행자에 대한 불친절함을 경험해서인지, 다시 찾은 이곳 사람들의 상냥함에 나는 감사하면서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현지시간 자정이 되어 도착해서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40킬로의 짐을 지고, 끌고, 매어서 6개월 동안 지낼 숙소로 왔다. 근처에 자리 잡은 유엔 직원들을 겨냥해서인지, 레지던스로 내어준 이 방은 가정집이나 하숙집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호텔이다. 일주일에 두 번 상주 직원이 방을 청소해주고, 빨래나 다림질도 약간의 돈을 주고 맡겨야 한다. 한 달에 한화로 약 30만 원 정도의 가격에 이런 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건, 사실 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화로움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였다. 게다가 작은 골목길에서였다. 빨간 신호에서 누가 몇 발자국을 걸어 길을 건너도 뭐라고 하지 않을 그곳을, 사람들은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서 있었다. 여행을 갈 때 나도 모르게 관찰하는 것 중 하나, 바로 현지인들의 신호등 건너기 습관을 보는 것이다.
숙소에 짐을 대충 정리해 놓고 지도를 들고 거리에 나온 나의 첫 번째 목적지는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될 유엔 건물. 지도상에는 분명 저 골목만 건너서 쭈욱- 따라 올라가면 건물이 나온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건너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한참을 서 있었던 와중, 현지 아주머니들이 어느새 내 옆에 서 있다. 그 순간, 에라, 모르겠다 하며 길을 건너려던 찰나, 아주머니는 나에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손짓을 한다.
' 너 지금 차에 치이려고 건너려는 거냐.'
분명 그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난 화답으로 어정쩡한 표정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요, 제가 이 동네에서 건널목은 처음 건너는 거라서요'라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또 한참을 서 있다, 아주머니가 길을 건너던 그 순간을 함께 했다. 방콕에서 길을 건너려는 타이밍을 도저히 모르겠다면, 옆에 서 있는 현지인이 발걸음을 떼는 타이밍에 함께하는 것이 최선이다.
- 툭툭, 오토바이, 차들이 한데 뒤엉켜버린 흔한 방콕의 도로. 웬걸, 신호등이 없다.
-차들 뒤로 보이는 교복 입은 아이들의 모습. 올 때마다 느낀 건데, 태국의 교복은 회사원처럼 흑백이 많은 것 같다.
똑똑한 구글맵은 10분이면 건물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 일러줬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UN 간판이 보였다. 유엔 아시아 태평양 본부. 한동안 이 건물에서 신분증을 가지고 출퇴근을 하게 되겠지. 인생에서 한 번쯤은 유엔이란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곧 이루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더 소중히, 그리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지,라고 다짐했다. 몇 개월 동안 지내면서 어쩌면 무감각해질지도 모를 건물을 보며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이란 것,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 있는 이곳으로의 출퇴근의 순간을 감사히 여겨야겠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 무법지대 길을 건너 길을 쭈욱-따라 올라가다 코너를 돌아 찾은 유엔 표지판.
- 신문 기사 사진으로만 보던 유엔 건물. 밖에서 소심하게 보니 생각보다 작아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르겠지. 입구에 서양 아이들이 양복을 입고 목에는 신분증을 건채, 입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들을 골라서 찾아다녀서인지, 유독 공중전화가 많아 보였다. 주황색, 분홍색 눈에 띄는 공중전화들. 휴대폰 보급률이 궁금해진 정도였다. 곳곳의 공중전화를 철거시키기에 비용이 부담스러워서인지, 아님 아직 휴대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나에겐 편의점보다 많아 보였다.
- 거리의 공중전화들.
방콕으로 오기 전, 친구와 함께 기념품 구입에 나섰다. 국제시장에서 외국인 시각에서 '한국스러운' 것들을 사고 있던 찰나, 친구는 그런 것 보다 소위 말하는 저렴이 화장품을 사서 선물하는 것이 훨씬 낫다며 나에게 한마디 한다.
" 넌 행동반경은 인터내셔널 하면서 센스는 왜 이렇게 전통스럽냐. 태국 공주가 에뛰드 화장품 쓰는 것도 모르나."
그러고 보니 오래전 태국의 호화스러운 백화점에서 에뛰드 상점을 보고 놀랐고, 뻥튀기된 가격에 그보다 열 번 놀랐었다. 몇 곳의 저렴이 화장품 가계들을 돌다, 난 태국 공주님이 썼다는 브랜드 화장품 가계에 들러 몇 개의 핸드크림을 샀다. 친구는 미백 기능이 있는 팩 같은 제품들을 사는 게 좋을 거라며 적극 권했지만 이미 산 선물들 때문에 가격이 부담스러워져 그 이상 구매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해지면 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태국에 도착해 길을 걷다 발견한 어느 사진 가계. 태국 느낌이 물씬 드는 사람들의 분위기보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거리에서 본 사람들보다 훨씬 밝게 포샵된 그들의 피부색이었다. 같은 아시아 계이지만 확실히 이들과 다르게 생긴 나는 동북아시아 계통이구나, 느꼈는데 사진관에 걸린 액자 속 그들의 피부는 내가 보아 온 실제 그들의 톤보다 밝다.
아시아 사람들의 공통된 미의 기준인 미백은 어쩔 수 없구나, 느끼며.
- 실제로 보면 더 확연하게 느끼겠지만, 그들의 피부톤을 보고 새삼 그들의 미의 기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의 첫 카오산 로드는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나 화려한 네온사인들 틈으로 정신없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호객꾼들, 그리고 흔히 말하는 동남아 스타일의 옷들을 쫙 빼어 입은 서양 사람들로 북적한 그곳은 나에게 신천지였다. 두 번째 왔던 카오산 로드는 예전만큼의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카오산로드는, 집 근처에 위치한 투어리스틱한 어느 한 골목이 되어버렸다. 지도를 들고 다시 찾아온 카오산 로드. 언제와도 똑같이 두 손을 모은 맥도널드 아저씨가 웃으며 인사하고 있었고,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비 오는 날 만나 담소를 나누었던 버거킹도 그대로였다. 광복절이 금요일이어서 그런지, 한국어도 곧잘 들렸다. 이 날 본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은 예쁜 원피스에 카메라를 손에 들고 휴가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카오산 로드. 배를 내놓고 걸어 나오는 외국인 아저씨, 고향 나라에서 그러시나요. 오 마이 갓.
배고픈 학생 시절 배낭여행 왔던 이 곳에서의 나의 주식은 카오산 로드의 팟타이였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레스토랑 한번 안 가고 주야장천 카오산 근처의 노점상에서 팟타이와 간식거리들로만 주식을 해결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어서 허기가 극에 달했을 때도 생각 난 건, 그때 먹었던 팟타이였다. 카오산로드에서 파는 팟타이 노점상들의 가격은 통일되어 있다. 기본 25, 계란이 들어가면 30. 나는 "with egg"를 주문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 팟타이를 볶는 노점상 아저씨의 현란한 손동작을 물끄러미 보며 어서 허기를 채울 수 있기를 기다렸다.
- 건네받은 팟타이를 손에 들고 서 있으니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던 여자 아이 덕에 뒤쪽에 앉아 팟타이를 숨도 안 쉬고 마셨다.
-방콕에 오기만 하면 만났던 너,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