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정 Sep 18. 2016

3. 처음

새로운 만남, 그리고 일

무얼 하든 "처음"이 그 기준이 된다. 처음 느꼈던 감정이 지나친 기대라면, 시간이 조금씩 지난 후 대상의 본질은 그대로 일지라도, 어쩔 수 없는 실망감을 가지게 될 수 있다. 반면, 처음 느꼈던 감정이 아주 시시한 것이라면, 어느 순간 그 대상에 호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무엇을 하든 나는 늘 밸런스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나, 업무처리에서나, 심지어 스스로에 대한 통제까지. 


# 첫 발.

9시 반까지 오라고 했지만 아침밥을 먹고 천천히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9시 10분 전 즈음 리셉션에 도착했던 것 같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에서 알려준 대로 HR 부서에 연락한 후, 직원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5분 뒤 내려온 직원은 주야장천 연락했던 HR 소속이 아닌, 같은 부서에 일하게 된 현지 직원이었다. 그녀는 주로 프로그램 매니저를 보조하는 일을 하는 듯했으며 초짜 직원인 나를 이곳저곳 데려다주고 귀찮은 행정적인 절차까지 처리해준 고마운 동료였다. 나를 챙겨주는 것이 그녀의 역할일지 몰라도, 귀찮은 내색 한번 안 하고 돌아가는 길까지 나와 함께 해 줬다. 심지어 나는 집으로 가는 방향을 잘못 가리켜 엉뚱한 통로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괜찮아, 운동한다고 생각하지 뭐!"라며 미안해하는 날 위로했다. 아무리 행정 지원 업무가 본인의 main job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배려하는 성품이 없다면 그렇게까지 하기 힘든 것을 알기에, 무척이나 고마웠다. 오래전 똑같은 인턴 자리를 위해 동유럽에 도착했을 때 한국인 직원은 갓 사회에 들어선 나를 썩 귀찮아하는 것이 느껴졌었다. 나중에 친해진 다른 동료는, 그녀가 나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공항에 나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줘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고 했다. 어쩌면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불러가며 나를 챙겨준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알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 어떤 리더십. 

목소리가 크고 활기찼다.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에너지는 자신감이 없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당당함이 근간이 된 에너지였다. 현재 부서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쭉-설명하곤, 나에게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책상 위에는 여러 팸플릿 및 책자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3일 정도 프로그램들에 대한 감을 익힌 후, 면담을 통해 관심 분야를 정하고 향후 인턴십을 시행할 때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을 했다. 스웨덴에서 온 워킹맘으로, 본인도 석사 논문 한 학기를 남겨두고 케냐에서 6개월 인턴을 했다는 나의 슈퍼우먼 같은 슈퍼바이저는, 한 달 동안 스웨덴에 home leave를 다녀온 터라 밀린 업무 때문에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다음 주면 프랑스로 돌아갈 옆자리의 인턴은, 그녀는 정말 어메이징 하다며 본인이 일주일 동안 끙끙댔던 업무를 슈퍼바이저는 하루 만에 뚝딱 해치웠다며 혀를 내두른다. 퇴근 후 걸려온 전화. 오늘 나를 하루 종일 챙겨줬던 동료는 슈퍼바이저가 내일 오후 관련 업무와 연계한 이벤트에 참여했으면 한다며 참석 의견을 물어본다. 내가 사무실을 떠난 바쁜 와중에도 슈퍼바이저가 날 생각했다는 것, 그리고 내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 전화까지 한 동료에게 모두 고맙다.


# 한국인 effect.

방콕 유엔 아시아태평양본부 인턴의 majority는 한국인. 외국인 인턴이나 직원들을 만나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여기 한국인 정말 많아요."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돌아온다. 미디어에 비친 반기문 사무총장님을 보고, 지구 밖으로 행진하라는 한비야 님의 책을 읽고 두근거렸던 우리 세대는, 그 윗세 대보다 수월하게 해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분들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 그 이유들 뿐이랴. 개인의 스토리는 개인이 가장 잘 아는 법. 내가 일하는 부서는커녕 기구에는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지만, 점심시간 곳곳에 들려오는 한국어 그리고 인턴들을 보니 새삼 국제기구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그리고 길은 여러 가지라는 것 마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업무에 임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리서치가 될 것인지, out reach가 될 것인지, 슈퍼바이저는 나에게 결정하라고 했지만 사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유엔 여성기구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반기문 총장님이 설립한 비교적 신생 기구로써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약 3일 정도까지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대화를 통해 나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찾아봐야 할 듯하다. 6개월,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 비포 선라이즈는 없다. 

9년 전 5일간 만났던 태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다지 많은 대화를 한건 아니었고, 정작 나는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들을 가이드해야 하는 입장이었던지라 오랫동안 연락을 하고 지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정작 그 친구를 가이드했던 오빠는 "이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만나도 의리를 지킬 것 같아"라고 했더랬다. 영화제가 끝나고 다음 해, 태국으로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가서 이 친구를 만났었고, 5년이 다시 흘러 회사원이 되고 갔던 방콕에서 다시 재회했다. 그리고 4년이 다시 흘러, 나는 이 친구와 이번 주 금요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부서에는 휴가를 떠난 핀란드 컨설턴트를 제외하고 현재 4명이 있다. 게다가 다음 주 인턴 근무가 끝나는 프랑스 친구가 빠지면, 사무실은 더 쓸쓸해질 것 같다. 슈퍼바이저가 회의로 먼저 사무실을 떠난 후,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로 지원 업무를 하는 태국 현지 동료와 우연히 SNS 친구를 맺고는 화들짝 놀랐다. 금요일 만나기로 했던, 나의 9년 인연의 그와 친구사이였던 것이다. P군과 대학 동기라는 나의 동료는 세상 참 좁다며 놀라워했다. 9년 전 내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널리고 널린 국제기구, 그리고 지역에 하필 이 부서가 아니었다면, 우리 세명은 그렇게 인연이 닿지 못했을 것이다. 셀린느와 제시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역에서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까지 9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만났더라면, 아마 SNS 친구를 맺고 스카이프를 하며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돌고 돌아 서로를 그리움으로만 묶어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SNS가 아니었다면, 그녀와 나 사이에 P 군이라는 공통된 친구가 있다는 것도 우린 몰랐을 것이다. 


# 그녀를 대신하여.

현재 근무하고 있는 부서에는 시행하고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리고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한 기관이 주최하는 이벤트에 참석해 달라는 슈퍼바이저의 말에, 나는 흔쾌히 오케이를 했는데 이게 알고 봤더니 그녀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대신해서" 가라는 것이었다. 이멜에 적힌 "on behalf of"이라는 글귀를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슈퍼맨 같은 그녀를 대신해 근무 이틀 차인 인턴인 나보고 가라니, 게다가 정부 기관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어떻게 자기소개를 해야 하나. 사무실에 현재 4명밖에 없다는 것도 있고 나름 신생 파트너십인 것 같기도 하다만 그래도 대학원생 근무 이틀 차 인턴을 보고 참석하라는 쿨한 슈퍼바이저의 결정에 나는 감사해야 할지, 당황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땡큐"로 상황 정리를 했다. 


이제 시작된 인턴 생활의 다짐:

+ 1을 시킨다고 해서 1만 하지 말고 1을 더해도 보고, 빼기도 해보고 곱해도 보고,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것

+ 모든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

+ 모르는 것은 분명히 물어보고 내 것으로 소화할 것

+ 똑똑하게 질문할 것

+ 침착하고 깔끔하게 일 처리할 것

매거진의 이전글 2. 여행과 일상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