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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Sep 21. 2016

4. 매일의 성장 기록

어쩌면 인턴이기에 흡수할 수 있는 것들

# 결국엔 마케팅

현재 소속된 부서와 세계무예타이협회는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기관은 무예타이 선수들 및 관련 트레이너들을 통해 여성 폭력 근절 관련 홍보를 할 수 있고, 무예타이협회는 사회적 책임을 하는 스포츠로서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있다. 어쨌든, 슈퍼바이저를 대신해 택시를 타고 한 시간쯤 걸려 도착한 태국 스포츠 기관에는 고위 정부 및 외교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줄줄이 이어지던 태국어 연설로 지쳐갈 때 즈음,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의 유일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내가 갔어야 했던 이유를 아주 명확히 알게 되었다. 


"무예타이협회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엔 여성기구와 여성폭력 근절 관련 파트너십을 맺고 적극 참여하고 있고요. 지금 여기 행사장에 유엔에서도 참석해 주셨습니다."


아, 내가 갔어야 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이분이 단상에 올라가 유엔에서도 오셨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가 갔어야 했던 것이다. 부서장이든, 컨설턴트든, 근무 3일째인 인턴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유엔 배지를 달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NGO든, 국제기구든, 사기업이든, 파트너십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업무를 하는데에 그 어떤 일이든 "손해"보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 Self positioning

직관상, 슈퍼바이저는 인턴이기는 하나 사기업에서의 경험을 봐서인지 어쨌든 (감사하게도) 나에게 잡일만 시킬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여성기구에서 일한다고 하면 사실 여성학 전공자인지, 여성학 수업을 듣고 연구를 많이 했는 줄 알지만 사실 난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여성이 꼭지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캠페인을 하고 있고, 연구를 하고 있으며, 프로젝트들을 모니터링을 한다. 따라서 여성이 기반이긴 하지만 다양한 업무 스킬을 발휘하거나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에서의 개인적 경험도 계기가 되긴 했다. 그녀는 내일 오후 여성 교육과 연관된 기구 사람들과의 미팅이 있으며, 차주 외부에 있는 미팅에 그녀 대신 나보고 참석을 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당연히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삼일 출근한 인턴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계속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으면 멋진 기회도 놓치게 될지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모르는 건 당연한 거고, 배워나가면 된다. 천천히 적응하기보다 빨리 흡수해서 똑똑하게 일하고 싶다. 아니,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싶다.   



# 함께 할래?

"내일 점심때 farewell party를 할 거야. 함께 갈래?" 

내일이면 옆자리 프랑스 출신의 인턴 친구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이다. 내가 몸 담았던 한국의 조직들의 경우, "내일 ~씨가 마지막 근무일이니 저녁 회식합니다."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큰 불만은 없었을 것이지만 며칠 안된 이 곳에 있으면서 놀란 건, 무얼 하든 내 의사를 먼저 물어본다는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내일 미팅이 있어, 바쁘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을래?" 혹은 "시간 있으면 우리 파트너가 주관하는 이벤트에 다녀오지 않을래?" "네가 그곳에 와주면 정말 기쁠 것 같아." 


일방적인 통보는 없다. 먼저 정보를 알려주고, 나의 의사를 물어본다. 아마 사회생활을 이런 조직에서 먼저 경험했다면 아마 이 곳에서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직된 조직에서 오래 몸담고 있다가 온 나의 경우, 미세한 특징들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물어온 질문들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 기쁘다.



# Structure 파악하기

이메일을 쓰는 방법이나 스피치의 경우, 그 구조가 있다. 슈퍼바이저가 건네준 연설문을 받아 들고 천천히 읽으면서 문단마다 구조를 파악하고 중요하다 싶은 표현들은 따로 메모를 했다. "그들"의 언어를 어서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딩을 하라며 건네 준 자료들도 그냥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연구조교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별로 표를 만들어 요점을 정리했다. 물론 누가 시킨 건 아니었고 또 보고를 할 것도 아니다. 지겹지 않게 리딩을 할 수 있었고 어쩌면 다음에 올 인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스스로가 업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건 두말할 것도 없다.



#한 명의 구성원

슈퍼바이저는 인턴인 나를 한 명의 구성원으로 인지해주는 듯했다. 다른 직원에게 소개를 할 때 풀타임으로 언제까지 일하게 된 직원이라며 날 소개했고, 자료 요청을 위해 찾아갔다가 6개월이긴 하지만 성과를 내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도, 그녀는 내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전담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피드백해줬다. 차주에 있을 다른 기관들과의 중요한 프로젝트 미팅에도 주최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굳이 날 참석시켰다. 옆자리 인턴은 슈퍼바이저가 본인에게는 한 번도 미팅에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한적 없다며 행운이라고 이야기한다. 여러 경험들을 하며 내가 배운건,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바쁜 와중에도 날 배려해 준 그녀에게 감사하고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것이다. 욕심을 더 낸다면, 그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고 싶다. 



#I'm lucky

그녀의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고작 일주일을 만났지만 사실 한 달은 알고 지낸 것처럼 그녀가 가깝게 느껴졌으며 꽤나 허심탄회하게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떠난다고 했을 때, 내 옆자리의 친구가 떠나는 것처럼 많이 아쉽고 허전함이 밀려오는 기분을 억지로 막지는 못했다. 고작 4명 정도인 우리 부서 사람들은 서로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선택한 '인간적'이라는 단어는, 직급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며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었으면 어쩌면 감히 만나지도 못할 그런 경력을 지닌 슈퍼바이저를 이름으로 부르며 서스름 없이 궁금한 것은 물어보며 조언을 듣기도 한다. 고로 인턴인 그녀가 떠나는 것이었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한 명의 동료가 떠나는 것을 진심으로 배웅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가 행운이라고 한다. 정말 멋진 슈퍼바이저를 만나서,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책임감을 전가시키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전담시키는 것 같아서, 그녀는 내가 무척 행운이라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곳에 몸 담았던 당신이 행운이라고 느꼈으니, 나는 당신과 같은 행운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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