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도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물리법칙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그 작용을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계산할 순 없지만, 삶이 흘러가는 원리 속에도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숨어있다.
하루 밤을 새우면, 다음 날 또는 그다음 날까지 여파가 미친다. 당장의 하루 밤을 새워서 만들어야 할 무언가가 있어서 그것을 끝내더라도, 그다음 그다음의 생산성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개인적으로는 20대 때 제법 밤잠을 자지 않으며 일을 했었는데, 이제는 절대 잠을 거르지 않는다. 뒷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 그 총량을 미리 당겨 쓰면, 그만큼의 반작용이 생겨난다. 어쩌다가 에너지 관리가 안 되어 방전이 되기라도 하면, 다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직의 운영도 이와 비슷하다.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예를 들어 성과 중심으로 지나치게 조직을 몰아붙이면, 그에 따르는 반작용들이 반드시 생겨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번아웃을 경험하는 구성원이 늘어날 수 있다. 또는 지나친 압박으로 구성원이 이탈할 수도 있다. 조직 차원에서는 조직 전체의 에너지 레벨이 떨어질 수 있다. 압박이 가해지는 그 순간의 성과는 일시적으로 좋아질 수 있지만, 프로덕트의 품질이 저하되면서 장기적인 성과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리더는 이런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이해하고 넓은 시야로 조직과 사람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조직을 밀어붙일 때는 예상되는 반작용을 고려해야 하고, 그에 대한 리스크가 충분히 감당이 가능한 선에서 조직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적절한 수준에서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보다 한번 에너지가 방전된 조직의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리는 게 훨씬 어렵다.
오래된 전자기기 중에 배터리가 고장 나서 일정 퍼센트 이상 충전되지 않거나 충전기를 꽂지 않으면 금세 방전되는 경우가 있다. 마치 그런 것과 비슷하게 조직이 한번 '퍼지면' 원래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들게 될 가능성이 있다.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때로는 '한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리더는 분명히 조직의 에너지 수준의 상한을 인지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가령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110까지만 밀어붙이고 관리한다. 여기서 더 무리하게 되면 그다음에 일어나는 반작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렇듯 조직의 상태를 적절하게 판단하면서 전략적이고 지혜롭게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작용과 반작용의 원칙을 이롭게 쓰면 얼마든지 이로울 수도 있다. 긍정적인 피드백과 교감을 전파하면, 긍정적인 피드백과 교감이 돌아온다. 물리법칙처럼 엄밀하게 계산되진 않지만, 어떤 모양이든 다시 '긍정적인 반작용'이 되돌아온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조직의 운영도 그렇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긍정적인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그에 걸맞은 반작용이 돌아온다. 하다 못해 잡플래닛 평점으로 그 긍정적 반작용이 반영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좋은 사람이 조직에 합류하게 될 확률이 향상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구성원을 그야말로 '자원'으로, 거대한 기계의 부품 정도로 여기는 리더들을 본다. 에너지가 방전된 사람은 그냥 부품의 부속품처럼 갈아 끼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때때로 갈아치운다. 이런 방식의 리더십으로 조직을 운영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조직이 성장할지 몰라도 어떤 한계는 넘어설 수 없다. 리더 개인이 커버할 수 있는 그 범위만큼을 벗어나지 못한다.
노자의 '은미한 밝음'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은미한 밝음(微明)’이라고 말한다.
연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도덕경』 36장
여기에서 노자의 지혜를 참고해 본다. 개인적으로는 노자의 사상에서 리더십에 대한 많은 영감을 받는데, 오늘 이야기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노자의 '도덕경'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노자는 '빼앗으려면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와 그 맥락이 통한다.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 '빼앗으려' 하면, 마치 이솝우화의 '북풍과 태양' 이야기처럼 움츠러들게 된다. 그러나 무언가를 '주면' 그 반작용으로 상대방도 무언가를 되돌려주기 마련이다.
이어서 노자는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구성원들에게 리더가 어떤 액션을 취할 때 그 의도가 드러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은미한 밝음'이라는 표현처럼,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위에서 다룬 예시로 다시 돌아가서, 리더가 '한계까지 밀어붙인다'고 말할 때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조직의 에너지를 110까지 끌어올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런데 구성원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때 '저 사람이 110까지만 우리를 끌어올리려고 하는구나'하고 그 의도를 알아차려서는 곤란하다. 의도를 파악하면 그에 맞춰 적당하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저 리더 완전 순 또라이네. 힘들어 죽겠는데 한계까지 몰아붙이라니'라고 느끼게 해서도 곤란하다. 리더와 구성원들 사이에 심리적 긴장감이 생기고 리더십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둘 사이의 경계에서 최적의 지점에 구성원들이 설 수 있게 만들 줄 아는 것이 리더에게 요구되는 지혜다. 나는 리더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압도되어 지나치게 강경하거나 과도한 액션을 취하는 경우들을 많이 봐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체로 조직의 장기적인 침체나 성과 부진으로 이어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리더, 공감하는 리더
최근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어떤 조직이 위기에 봉착했는데, 그 조직의 리더가 위에 말한 것처럼 상황에 압도되어 연달아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리더의 지혜로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리더가 지혜롭게 조직을 관리하려면 리더도 성장해야 한다. 먼저는 더 넓게 현상을 바라보고 양 극단의 상태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찾아갈 수 있는 현명함과 지혜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며, 나의 결정과 선택에 대한 반대 의견을 청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정말 중요하다.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는 결국 사람의 마음의 원리이기도 하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살피고 조직의 상태를 살필 수 있어야 전략적이고 지혜로운 관리가 가능해진다. 이 감각은 결국 '공감'이다. 나는 공감할 줄 아는 리더가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이런 지혜로운 리더, 공감할 줄 아는 리더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