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리더십(3) - 조직
조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혼자만의 힘으로 달성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몹시 많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인간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공동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동네 축구에서 공을 놓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처럼 해서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여서 ‘잘’ 해야 한다. 여기에서 역할의 분담이 일어나고 체계나 시스템 등이 생겨난다. 예컨대 9시에 모여서 6시까지 일한다. 누군가는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누군가는 어떤 실행을 한다. 이런 간단한 것에서 출발해서 복잡한 구성들이 탄생한다. 이처럼 사람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조직이 탄생했다.
조직
2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의식적으로 행동이나 힘을 조정하는 (협력) 시스템
- 체스터 버나드
나는 조직 탄생의 본질은 협력을 통한 목표 달성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직을 구성할 때 가장 신중하고 중요하게 다뤄야 할 포인트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협력이 이루어지게 하는가’이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돕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대한 방법적 고민이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협력과 보충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조직의 구조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수직적 구조 vs 수평적 구조
내가 조직 생활을 하며 가장 답답했던 때는 계층이 많은 조직에서 어떤 계획을 만들고 실행해야 할 때였다. 기안을 올리고 층층이 있는 조직을 따라 단계 단계 승인을 받는 것이 매우 당연한 조직들이었다. 그중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기안이 말도 안 되게 첨삭되어 되돌아올 때였다. 이에 대해 토론의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윗 분의 뜻’이니 그냥 해야 한다는 식의 통보가 많았다. 현장 전문가의 입장에서 비전문가인 ‘윗 분’의 피드백이 어처구니가 없을 때도 있었는데, 어쨌든 그대로 해야 할 때 정말 화가 났다. 경우에 따라서는 흔히 사용되는 밈처럼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라는 식의 황당한 지시가 내려와도 반박은커녕 일단 하고 봐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특별히 더 답답하고 화나는 순간은 맥락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채로 지시사항을 통보받을 때였다. 그중에는 어떤 논리적 근거나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리더의 기호에 기반한 의사결정인 경우도 많았다. 문제의식을 느끼더라도, 켜켜이 쌓인 계층구조에서 구름 위의 '윗 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
형식적인 논리에서는 조직의 상위 레벨에서, 정해진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니 당연히 따르는 게 맞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정이 현장에 전혀 부합하지 않다면? 조직의 성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시라면? 그래도 그냥 하라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 맞을까? 근원적인 질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라는 대로 했고 예상한 대로 문제가 발생했는데, 오히려 시킨 대로 한 사람이 질책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조직의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런 과정 속에서 출발했다.
수평적 구조로의 전환
나는 개인적으로 오늘날의 조직은 수평적인 구조로의 전환이 필수라고 본다. 가능한 한 계층 구조를 단순화하면서 자율성을 부여하고 현장으로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그러나 전략 파트에서 이야기했듯, 자율성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권한 이양이라는 것도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비전과 전략이 명확하지 않은 조직에서의 자율성은 오히려 조직을 산으로 가게 만들 수 있다. 권한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없는 입장의 사람이나 조직에게 권한을 넘겨주면 오히려 조직의 성과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조직의 상황과 구성원들의 역량에 대한 진단 없이 시류를 좇아 자율성을 부여하고 권한을 이양한다고 성과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경영 현장에서 가끔씩 보는 현상 중에, 시대마다 유행하는 경영 개념을 그냥 좋아 보이니까 무작정 적용하는 경우들을 보는데 그것이 성과를 실제로 보장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내가 경험했던 조직 중 영어 이름을 쓰는 조직이 있었다. 요즘 그런 곳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경험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영어이름을 쓴다고 조직문화가 수평적으로 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리더의 실질적인 의지를 바탕으로, 조직 문화와 시스템의 개선이 없이 호칭만 영어로 바꾼다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조직의 비전과 전략이 충분히 잘 갖춰지고, 적절한 역량을 갖춘 인재가 조직 곳곳에 있다면 조직구조를 최대한 수평적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율성을 부여하고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조직에 큰 도움이 된다. 빠른 변화의 시대에 수직적 계층이 층층이 쌓인 조직에서는 빠른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을 하기가 무척 어렵다. 현장 이해도가 떨어지는 리더들의 이상한 결정으로 잘못된 의사결정 이루어질 확률도 높다. 계층을 최대한 줄이고 가능한 한 권한을 현장으로 넘기는 결단이 필요하다.
특별히 AI기술의 발전으로, 실력 있는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성과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지고 있는 지금 더더욱 그렇다. 변화의 속도만큼 의사결정의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계층 구조를 따라 ‘품의’의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단계단계 진행해서 실행할 여유가 없을 때가 정말 많다. 적절한 역량을 갖춘 사람에게 적절하게 권한을 이양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AI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변화가 절실하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조직의 구조를 수평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조직을 ‘네트워크’화 한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이나 개인은 그 안에서 ‘노드’가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노드와 노드 사이의 연결이다. 즉 원활한 연결을 기반한 적절한 협력이 정말 중요해진다. 조직을 수평적 구조로 변화시킬수록 그만큼 협력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조직의 존재 이유를 마치 ‘경쟁’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조직의 각 부분끼리 경쟁시키고, 사람과 사람들끼리도 경쟁시키는 경우들이 있다. 경쟁의 방식은 주로 성과에 의한 차등적인 보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경험한 조직 중 최악의 조직 중 하나는, 모든 문제를 경쟁으로 해결하려는 리더가 있던 조직이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일종의 ‘경합’을 계속 유도하는 식이었다. 물론 그 결과 조직 간의 협력은 심각하게 저해되고 조직 전체의 성과는 악화되었다.
사람이 모여 서로 경쟁하는 것이 항상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경쟁과 협력은 서로 공존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체로 반비례 관계를 갖는다. 특히 조직 내 경쟁이 심화되면 반드시 협력은 저해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짜 성과를 내는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면, 나는 ‘협력’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의 결과로 전체의 성과가 커진다면 그 경쟁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의 결과로 협력의 체계가 무너지고 조직의 각 부분들이 사일로를 만든다면, 네트워크의 노드들 간의 연결이 끊어진다면, 장기적으로 조직 전체가 달성할 성과는 반드시 하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리더는 과도한 경쟁을 제어하고, 조직의 하부 조직들이 지나친 부서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노드와 노드 간의 연결이 얼마나 적절히 이루어지는 지를 살펴야 한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충
상위 조직이 하위 조직을 마치 ‘성과 셔틀’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다. 공은 자기가 차지하고 책임은 하부 단위로 떠넘기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하위 조직은 가능한 한 리스크 테이킹을 안 하려고 한다. 요구되는 최소한의 성과만 달성하고 적당히 태업모드에 들어가거나 대충 눈속임을 하려고 한다. 조직의 전체적인 성과가 떨어진다.
그러므로 상위 조직은 하위 조직을 ‘보충’하는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하위 조직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상위 조직이 보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충성의 원리(Subsidiarity)'라고 부를 수 있다. 보통 ‘보충성의 원리’는 행정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경영원칙으로 적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어쨌든 '조직'의 원리를 다루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보충성의 원리
행동의 우선권은 언제나 ‘소단위’에게 있는 것이고, ‘소단위’의 힘만으로 처리될 수 없는 사항에 한해서 ‘차상급단위’가 보충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 - 위키백과 인용
위의 정의를 단순히 보면 행동의 우선권에 주목하여 볼 수도 있지만, 포인트는 소단위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차상급단위가 지원하고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몹시 상식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회사 등 여러 조직에서 이런 원리대로 조직이 굴러가지 않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다. 지나친 성과 압박과 거기에 연동된 보상 시스템,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태도와 실제 조직에서 일어나는 업무 과정에 대한 무관심이 이런 현상을 만든다. 위의 ‘협력’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리더는 조직에서 보충성의 원리가 잘 지켜지는지에 대해 점검하고 피드백해야 한다.
친해져야 할까?
협력과 보충을 이야기하면 이런 질문이 따라올 수 있다. “구성원들이 친해져야 할까?”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반드시 친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굳이 친해질 필요 없이 일만 잘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조직의 목적이 ‘친해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존재 그 자체의 목적이 친분과 교류인 동호회나 동아리 같은 모임이 아닌 이상에는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원활한 대화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협력의 기반에는 원활한 대화와 소통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만약 조직 내의 대화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면, 그리고 그 대화와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구성원 간의 친분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판단된다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는 것이다. 많이 말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내가 하는 말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레드팀’을 가동해 조직 내의 의사결정과정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같이, 조직 내에서 얼마든지 반대 의견을 내고 토론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문화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전략 실행을 위한 조직 구축의 방법
결국 조직을 구축하는 것은 우리 조직의 비전과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최적의 구성을 찾는 일이다.
1. 조직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2. 구성원의 역량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3. 위의 분석을 바탕으로 가능한 한 조직의 계층을 줄인다.
4. 현장으로 권한을 이양한다.
5. 조직이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6. 상위조직은 하위조직을 보충해 준다는 보충성의 원리가 실현되도록 조직을 구축한다.
7. 특별히 구성원 간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조직의 결국은 사람이다.
조직을 구축하는 일은 고려해야 할 복잡한 사항들이 많다. 특히 최종 의사결정자의 입장에서는 조직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고 옮기는 것이 단순히 ‘조직도의 변경’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요소들이 간과되는 경우들이 있다. 조직 개편의 이면에는 사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조직에 대한 변경을 할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와 집단 사이의 역학 관계 등 추가적으로 살펴야 할 요소들이 굉장히 많다. 이론적으로는 성공할 것 같던 조직의 변경이 실제로는 조직의 침체나 성과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들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람의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과 관련된 일의 근원에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조직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협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의 협력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조직의 근간이다. 또한 부족한 역량을 서로 보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은 조직도 상에 그려진 구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 속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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