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치유의 리더십'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이유
인간은 아프다. - 칼 융
리더의 포지션에서 다양한 사람과 조직을 겪으며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성찰해 왔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리더십에 대한 나의 가장 큰 고민 주제는 '리더십은 조직과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가'이다. 칼 융의 견해를 빌리면 우리는 본래의 온전한 상태에서 멀어진 채 살아가는데, 이것을 '아프다'고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에게는 '치유'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떤 경향성을 갖는다. '아픈' 상태에서 벗어나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런 경향이 있음을 스스로 자각한 사람들은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온전함에 이르기 위한 열망을 갖게 된다. 그 열망을 이루기 위해 진짜 나를 찾고 실현하고자 한다. 이런 과정을 '치유'라고 부를 수 있다.
나는 '일'이 치유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일'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내가 되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생의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일'을 통해 진짜 나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이루어갈 수 있다면, 치유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리더가 구성원으로 하여금 일이라는 방법을 통해 치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면, '리더십'이 곧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진정한 치유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 칼 융
나는 조직이 영혼의 무덤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무덤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했던 조직들은 대체로 생명력을 잃은 조직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런 조직 안에서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영혼 없이 살아갔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런 조직 안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었다. 하루하루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듯 일을 하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일을 했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건 그닥 없었고 성장과 행복을 경험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죽지 못해 사는' 느낌이랄까. 나뿐 아니라, 그런 조직에서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도 아팠다.
그러나 어떤 순간, 어떤 조직 안에서는 일을 하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고 성장과 행복을 경험하기도 했다. 한 때라도 그런 경험을 했던 것은 축복이었을까. 그래서인지 직접 경험했던 조직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컸기에 '무덤 같은 조직'에서 느끼는 고통의 강도도 강했던 것 같다.
내가 한가닥 희망을 놓지 않은 이유는, 어쨌든 어떤 한순간에는 내가 속한 조직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성장과 행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일을 통해, 그리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리더십을 통해 조직이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이때 싹트게 되었다. 조직에 대한 고민, 리더십에 대한 고민에 천착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대표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던 때에는 지금보다 더 미숙했고 어리석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현실 속에 어떻게 나의 이상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많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가는 지혜를 배웠다. '이상적인 조직'을 만들자는 것보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괜찮은 조직'을 만드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상'은 차치하고 '괜찮은' 조직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괜찮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출발은 무엇일까? 그 출발점은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사람을 이해해야 비전, 전략, 조직, 인사, 성과, 평가, 보상에 이르는 리더십과 연관된 모든 경영 과정을 적절하게 구축할 수 있다. 오늘 다루는 '치유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도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완벽한 설명은 아니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특성은 이렇다.
1. 사람은 성장하기를 원한다.
2.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나는 위의 두 가지를 고려한 리더십이 '치유의 과정'으로써의 리더십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리더십이 작동하는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서 표현한 '무덤 같은 조직'을 생각해 보자. 시간을 때우듯 마지못해 일을 하고, 어떻게든 할 수 있으면 일을 안 하려고 한다거나 적당히 눈속임만 하는 선에서 일을 끝내려고 한다면 과연 조직의 생산성은 어떻게 될까? 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긴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그토록 낮은 것일까? 나는 이것이 리더십의 한계 때문이며, 잘못된 리더십의 작동이 조직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구성원들이 일을 의미 있게 여기고 자발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떨까? 일터에서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믿고 일하면 어떻게 될까? 심지어 일을 하며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면 또 어떨까? 이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리더십이 작동하는 조직이 있다면, 앞에서 언급한 조직보다 훨씬 더 탁월한 성과를 창출할 것이다.
물론 '성장해라', '일에서 의미를 가져라'는 구호와 말만으로 조직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현실에서 이런 조직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껴봤고, 많은 한계에도 부딪혀 보았다. 결론적으로, 리더의 견고한 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위에서 언급한 '비전, 전략, 조직, 인사, 성과, 평가, 보상'의 전체적인 구조가 제대로 구축되어야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리더십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리더십 에세이들은 모두 위의 고민과 성찰의 바탕에서 작성되고 있다. 물론 내 의견이 정답이나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생각이 바뀌거나 다듬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실패와 고통의 경험들을 글로 풀어가며 나름대로 내 마음의 치유를 경험함과 동시에, 나의 고민의 결과를 기록하고 리더십에 대한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고 싶다.
누군가는 내가 주장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거나, 너무 이상적이라고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꿈을 꾸는데 돈이 드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에 품고 있는 방향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과 부딪히며 더 나은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정립하는 지금의 과정을 즐기고 싶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의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음을 믿는다.
우리 인류의 삶이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발전하고 있는 과정이라면 나는 우리가 갖는 일에 대한 접근, 회사와 직장에 대한 접근법들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굳이 '죽지 못해 일하는' 삶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일을 통해 의미를 찾고 조직 안에서 성장과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면, 더 풍요롭고 건강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는 우리가 어떤 모양이든 어떤 조직에 속해 일을 하는 한, '치유의 리더십'이 우리가 나아갈 세상에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더해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리더십에 대한 고민과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MZ세대가 보이는 일에 대한 접근을 보면 변화의 양상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고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의 세대는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그에 맞춰 리더십도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조직, 성장하는 조직, 탁월한 성과를 내는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면, 나는 반드시 리더십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십은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을 묻는 자체가 그 가능성을 믿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수년간 겪었던 우여곡절과 리더십의 실패 앞에서 좌절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 일들이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경험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리더십'이 우리 삶의 치유를 이끌 수 있음을 믿고 글로 정리를 해나가는 이 일이 나에게는 어떤 소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정리하고 있는 리더십에 관한 고민과 제안들이 리더들에게 조금의 영감이라도 줄 수 있기를, 현실에 존재하는 '괜찮은 조직'을 만드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앞으로 우리가 속하게 될 조직들이 '무덤'이 아니라, 일과 함께 '치유를 경험하는 삶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