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리더십(2) - 전략
초기에 성공했던 스타트업들이,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왜 조직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을까? 거대한 규모의 조직임에도 왜 말도 안 되는 의사결정과 선택으로 점점 쇠퇴하는 경우들이 생길까. 나는 전략의 부재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리더의 전략적 인식의 부족이 큰 원인이라고 본다.
나는 기업이나 조직이 전략 없이 단기적인 결과를 위해 단기적 방법론에만 몰두하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경험했다. 임기응변식으로 순간순간 결정이 이루어지고, 이런 식으로 이런 중요한 결정을 즉흥적으로 한단 말야? 하며 놀랐던 적이 많다. 의사결정자의 한마디에 일관성 없는 일련의 결정들이 이루어지고 도대체 이 조직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고 느낀 적도 많다.
전략이라는 개념에 대해 글을 쓸지조차 망설여지기도 했다. 아쉽게도 전략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을 하는 조직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에서 전략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전략이라는 것은 전쟁 용어이다. 기업 경영 현장을 전쟁터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영 용어에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승/패를 전제한다. 내가 경험한 경영 현장 역시 그만큼이나 치열했다. 전략이라는 용어가 경영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와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오늘 글에서 다루는 전략에 대한 정의는 경영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들을 참고했다.
전략의 정의
- 전략이란 기업의 장기적인 목표와 목적을 설정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 과정을 수립하며, 자원을 배분하는 것 - 알프레드 챈들러
- 전략은 산업 내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이 택하는 차별화된 활동의 조합 - 마이클 포터
비전이 있어야 전략도 결정할 수 있다.
전략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설정한 방향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의 종합’이다. 그러므로 비전이 없는 전략은 존재하기 힘들다. 우리가 설정한 방향에 대한 정의가 비전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전략은 ‘방법의 종합’이다. 그러므로 전략이라는 것에 특별한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비전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비전을 달성할 유효한 방법들을 구상한다면, 이것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것이 전략이 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비전이라는 것이 당장 눈앞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멀리 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전략의 수립에는 장기적인 관점의 고려가 함께해야 한다.
따라서 전략은 장기적인 실행 방법으로부터 단기적인 실행 방법까지의 '조합'이다. 전략을 수립하는 이유는 당장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결정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다.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우리가 설정한 전략이 얼마나 유효한지, 잘 달성되고 있는 지를 평가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전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조직의 비전이 설정되어 있다면 그 안에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방법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거나 방법들을 추가/수정/삭제하면 된다.
아울러 비전이 적절하게 수립되고 이를 달성할 방법들이 잘 체계화되면 조직의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조직의 한정된 자원을 적절히 분배할 수 있는 근거는 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실 나는 전략이라는 단어를 붙인 그럴듯한 포장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 가끔씩 얼토당토않게 ‘전략’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경우들을 보곤 하는데, 속 빈 강정인 경우들이 꽤 많았다. 이처럼 전략이라는 포장지만 있다고 전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비전 아래에,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한 유효한 방법들의 종합으로써의 전략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 변화
나는 여러 조직을 경험하며 어떻게 회사를 이렇게 운영하지? 했던 경험이 많다. 체계도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일이 운영되는데도 회사가 굴러가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그런 조직이라 할지라도, 대표와 직접 이런저런 얘기도 해보고 일도 함께 해보면, 이 사람이 어떻게 창업을 해서 여기까지 회사를 이끌어 왔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추진력과 뚝심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왜 리더에게 이런 강점이 있음에도 조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망가져 갔을까? 내가 발견한 아주 중요한 이유는, 조직이 커짐에 따라 리더가 그에 맞는 리더십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직의 크기에 맞춰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과 역량을 성장시켜야 하는데, 사업 초기의 성공 방식에 매몰되어 리더십이 고착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나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소단위 조직에서 성공을 맛본 리더들이 일정 규모 이상 조직이 커지면 오히려 조직의 성장을 저해하는 경우들이 있다. 리더의 존재 자체가 조직의 리스크가 되는 것이다.
조직이 생겨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리더가 직접 최전방에서 뛰며 프로덕트를 만들고 사람을 채용하고,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사업 전 과정을 직접 나서서 해야 한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고 사람이 늘어나면, 그와 함께 성과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조직을 운영하고 시스템을 만들며 전략을 구축하는 역할로 자신의 역할을 변화시켜야 한다. 예컨대, 자신이 직접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골을 넣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감독의 역할에서 팀이 성공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 변화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으면, 조직은 전략 없이 그저 리더의 의사결정만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조직으로 전락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리더는 전체를 조망하고 우리 조직이 가진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이것들의 달성 상황들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소단위 조직일 때는 강력한 실행력의 리더가 ‘돌격 앞으로’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대단위의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조직이 전략을 가지고 방법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역할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는 리더는 자신의 성공 경험을 과신하며, 내 방식은 옳지만 나를 따라주는 구성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 것이라며 잘못된 원인 진단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축구에서의 전략 이야기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축구는 ‘감독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팀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도, 형편없는 성적을 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감독이 바뀌면 단숨에 상위권에서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 팀이 탈바꿈하는 경우가 있다. 경기에 임하는 전략과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감독의 역량이 경기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축구의 시즌은 장기적이다. 최종적인 시즌의 결말에서 우리가 원하는 순위에 이르기 위해서는 팀 전략과 훈련, 선수의 관리와 기용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감독은 이에 대해 코칭스태프를 선임하고 역할을 나누며 경기 마다 선수를 선발하는 등 전체적인 시즌의 운영을 책임진다. 단순히 카리스마가 넘친다거나, 전술적 아이디어가 뛰어나다고 해서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팀 관점에서는 그러나 더 긴 기간을 바라본 전략도 구상해야 한다. 일단 1부 리그 팀이라면 2부 리그로 강등되어서는 안 된다.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면 중상위권으로의 도약을 바라봐야 한다. 팀 단위의 전략이 잘 세워진 팀으로는 바르셀로나가 유명하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유소년 팀부터 성인 팀까지 같은 철학적 기반 위에 훈련하고 성장해서, 성인 선수가 되면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나 DNA가 내재화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모델이 장기적인 팀 성공 모델이 되어 바르셀로나를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긴 기간을 두고 구단 단위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지속적으로 방법을 실천해 온 결과이다.
재미있게도 스타 출신 감독들이 선수 시절의 명성을 깎아 먹을 정도로 형편없는 팀 운영을 하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아마도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성취의 시야로 사람을 바라보다 보니, 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그 이유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개인의 역량에 문제의 책임을 돌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초기에 성공했던 기업의 리더가 빠지는 함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룩한 눈부신 성취가 있더라도, 철저하게 자기 역할에 대한 변화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시야를 넓혀야 승산이 생긴다. 우리 사업이 장기적으로 시장에 진입해서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시야를 가지고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졸속이 지완을 이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졸속이 지완을 이긴다’는 말이 있다. 의사결정과 실행의 속도를 강조할 때 많이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이 ‘전략이 없어도 된다’는 말과 같은 말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과 상황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완벽한 전략에 집착하며 시간을 무한정 보내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다. 그러나 전략적 방향 설정 없이 계속해서 속도만 강조하다 보면, 그 졸속적인 업무 진행에 따라 생겨나는 여파들이 조직을 계속해서 갉아먹고 조직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당장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할인을 남발하면 당장의 매출은 늘어날지 몰라도 이익률이 급감한다. 이에 따라 비용을 줄이려는 시도로 품질관리에 소홀해지고 제품의 수준이 떨어진다. 제품 수준이 떨어지니 고객이 이탈한다. 이처럼 당장의 문제만 바라보고 단기적 해결책을 남발하면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므로 ‘완벽한 무결점 전략’은 수립하지 못하더라도 ‘전략적 방향 설정’은 조직에게 필수이다. 조직의 비전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방향이 결정되면 그것을 구성원들에게 전파하고, 그 안에서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속도감을 만들어가는 것이 일의 순서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하려는 리더에게
마지막으로 전략 개념을 정리하면서 클라우제비츠의 견해를 참고하고자 한다.
전략 개념의 출발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와 ‘전략’과 ‘전술’이 부합한 것이 곧 합리적이라는 개념을 창안함
- “군사 전략은 정치적 목표에 종속되어야 하며, 단기적 전술적 승리가 오히려 장기적 정치적 목표를 해칠 수 있다”
단기적 성과에 대한 집착은 조직의 장기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전략의 완벽함'을 기하기보다는, 비전과 전략을 정비하고 해당하는 방향에 구성원들이 잘 부합하도록 정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율’, ‘속도’ 말은 좋지만, 방향 없는 자율과 속도는 조직을 해칠 수 있다. 전체적인 방향의 틀을 잡아두고 그 안에서 자율과 속도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인 조직 성공의 밑바탕이 된다.
이를 위해 리더는 조직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역할이 변화함을 명심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인식하고 잘 실행하는 것이 결국 전략의 출발이다.
[이전 글]
치유의 리더십(프롤로그1) : 리더십이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