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놓치고 있는 ‘사람의 마음’

왜 우리 구성원들은 수동적일까?

by 아웃클래스

구성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고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것은 리더들의 공통된 관심사일 것이다. 내가 리더로서 들어봤던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 중 하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다 알아서 뭔가를 한다"는 칭찬이었다. 굉장히 뿌듯했다.


최근 어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약간의 한탄과 푸념을 했는데, 회사의 직원들이 대체로 수동적이고 의욕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문제가 뭐인 것 같냐는 물음에 되돌아오는 답변이 다소 아쉬웠다.


"모르겠어요. 그냥 의욕이 좀 부족한 거 같고... 지쳐있다고 해야 하나... 적극성도 부족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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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자체는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일 것이다. 나의 지인이 직접 보고 들은 현상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리더라면 이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표면적인 현상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탐구를 해볼 필요가 있다. 왜 많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수동적'인 채로 시키는 일만 하는 소극적인 상태가 되는 걸까?


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수동적으로 변하는 데에는 '사람'을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직 구성원들을 사람이 아닌 '성과를 위한 도구' 쯤으로 바라보는 리더들도 있다. 나 역시 그런 리더들과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동적으로 변하는 자신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자는 것은 단순히 '잘해주자'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이 언제 능동적으로 변하는지,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의 바탕에서 접근해야 그에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능동적으로 일하게 되는 걸까? 언제 어떻게 자발성을 갖게 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언제 어떻게 동기가 생겨서 자발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한번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왜 그랬나 싶을 만큼 제멋대로였던 것 같다. 부모님이 '공부해라' 하면 그토록 공부가 하기 싫었다. 공부를 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야 취업에 유리하다는 어른들의 조언은, 현실의 관점에서는 굉장히 타당한 말이었지만 '당위성'이 나를 크게 움직이지는 못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그때 그래도 부모님 말 듣을걸"하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마 그 당시로 돌아가더라도 또 비슷한 행동과 선택을 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 오묘하다.


사람은 '당위성'만으로 설득되지 않을 때가 많다. "왜 이게 맞는데 이대로 하지 않지?"라는 식으로 리더가 구성원들을 바라보면 시작부터 어긋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사람의 내면에서 어떤 행동이 유발되는 메커니즘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능동적인 행동을 만드는 것은 이에 대한 고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마음의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동해서 '스스로 하고 싶은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내가 생각하고 무언가를 계획해서 실행하는데 추가적인 에너지가 투입되기 때문이다. 수동적이 된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발성을 포기함으로써 시키는 대로만 하려고 하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능동적이 되기는 어렵고 수동적이 되기는 쉽다.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고, 능동으로 행동하는 것은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수동적으로 일 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구석이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더 함으로써 생겨나는 고통이 더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더 쉬워진다.


이와 같은 '사람'의 문제에 대해 이해한다면, 리더에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조직 문화도 일종의 관성이 있어서 수동적인 태도와 분위기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마치 건강을 잃는 것은 쉬워도, 한번 망가진 건강을 다시 회복해서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 단기간에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리더는 대개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조급해지기 쉽다. 그럼에도 건강한 조직에서 장기적인 성장을 생각한다면 전략적인 인내가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수동적이라고 해도 리더가 정말 뛰어나서 일일이 구성원들을 컨트롤하면 그래도 조직이 좀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하며 리더가 많은 영역을 떠맡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더 편한 구석도 있다. 그러나 아주 뛰어난 개인이 모든 지시를 일일이 해서 구성원을 다 통제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그 리더의 통제 가능한 범위가 그 조직의 한계가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올라갈 리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구성원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자율성이라는 환상

가장 단순하게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라!"고 하는 방안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이 뒤따른다. 이렇게 자율성을 부여하면 사람이 능동적으로 변할까? 사실 자율성을 부여하면 능동적이 될 거라는 생각은 일종의 착각이다.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해도 실상 적절한 방향과 규범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방치'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광활한 들판에 덩그러니 사람이 놓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선뜻 움직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는 마음대로 움직이다가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저절로 능동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성과의 관점에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조직의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서' 능동성을 발휘하여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방치 상태에서 구성원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면 조직 전체의 성과를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방향제시'가 함께하는 자율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방향제시는 다른 표현으로 '비전'이나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제시되는 비전이나 전략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따라갈만한 매력이 있어야 하고 납득이 되어야 한다.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자고 방향제시를 한다면 그 누구도 선뜻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능동성을 끌어내기 위한 선결 조건은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면서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잘 이루어져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다시 돌아와서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능동성이 생겨난다. '하고 싶은 일'을 만드는 것은 적절한 방향제시, 그리고 매력적인 비전, 납득할만한 전략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이에 더해 제시된 방향 안에서 우리가 함께 가는 방향을 달성할 수단을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이처럼 리더는 사람이 무언가를 '하고 싶도록' 만들고, 그 하고 싶은 일을 이루는 최선의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보상의 균형

적절한 보상의 유무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쉽게 말해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요구하는 것만 많은 상태'에서는 어떤 방향제시나 동기부여도 잘 먹히기가 어렵다. 어쨌든 저쨌든 직장은 나의 생계를 위해 다니는 곳이다. 내가 하는 기여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인 것이다. 열정페이 수준의 급여만을 주며 사람을 부려먹으면서 '왜 수동적이냐', '주인정신이 없다'고 타박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회사의 사정상 높은 급여를 줄 수 없는 여건이라면, 적어도 리더가 염치는 있어야 한다.


그럼 능동적인 실행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주는 것은 어떨까? 구성원들에게 거대한 보상이 주어지면 자발성이 생겨날까?


물론 혹할만한 거대한 보상이 주어지면 일정 부분 자발성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장기적인 운영과 안정성을 생각한다면, 매번 어떤 이벤트에 대해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동기를 끌어내면 리스크가 생긴다. '보상이 있어야만' 무언가를 하는 상태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적정 수준으로 보상을 관리하면서도,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 동의하고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금전적인 보상 외에도 적절한 칭찬이나 인정과 같은 내적인 보상을 함께 잘 활용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돈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모으는 소통

마지막으로 필요한 조건은 소통 가능성이다. 내가 속한 조직이 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의견이나 건의가 있을 때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전혀 제시할 방법이 없다면 답답해진다. 혹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건의를 했는데 매번 무시당한다면, 이 조직에 내가 무언가를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꺾이게 된다. 때로는 리더 입장에서 건의나 아이디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적절한 답변이나 피드백을 주는 등 소통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의견을 제시하고 하려는 것마다 무시당하는데 자발성을 가지라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일종의 폭력이다.


의견을 내보라고 해서 열심히 의견을 냈는데, "내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라며 회의 석상에서 타박하던 대표가 있었다. 분명 자신이 말한 대로 방안을 고민해서 가져갔는데,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직원들끼리 뒷담화를 할 때면 회의를 녹음해서 본인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하며 함께 공감(?) 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점차 수동적으로 변해갔고, 대표에게 무언가를 말하기를 꺼려하게 됐다. 나중에는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했는데 아무도 얘기를 하지 않자 혼자서 화를 내며 직원들을 타박하기도 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조직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또 다른 대표의 이야기이다. 제시한 의견이 마음에 안 들면 면전에서 무시하고 갈구는 대표였다. 한 번은 대표의 업무 지시에 맞춰 기획을 준비해 갔는데, 역시나 갈굼이 시작되었다. 피드백을 빙자한 사실상의 갈굼은 거의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체감상 1시간 중 내가 말할 수 있던 시간은 10분도 안되었던 것 같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니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고, 시키는 것만 혼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어졌다. 결국은 그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렇게 직장을 다닌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일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일하는 조직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앞서 보상에 대해 얘기했지만, 이제 막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거나, 영리 추구를 하는 조직이 아닌 경우 금전적 보상을 시원시원하게 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곳도 꽤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방향제시를 통한 동기부여와 소통의 가능성이 정말 중요하다.


결국 좋은 조직문화와 원활한 소통의 바탕이 있는 조직에서 능동성이 싹튼다. 전략적으로 인내하며 우리 조직의 '사람'이 왜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지를 돌아보자. 내가 놓치고 있었던 '사람'의 문제가 보이면서 해결의 실마리도 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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