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준비를 한창 하던 때 우리 부부도 여러 가지 문제로 솔찬히 다투었다. 지나고 보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도 내가 아내에게 조금(상당히 많이) 미안하게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 있는데 서재에 관련된 일이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책을 모으는 것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지만) 조그만 방의 벽면 2/3 정도를 채울 만큼의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이 책만큼은 꼭 제대로 넣어둘 공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것이라고 해봐야 결혼할 때 흔히 새로 장만하는 구두나 시계 따위여서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서재를 꾸미는 일로 다툼이 되었는데 결국 아내가 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신혼집의 방 하나에 흰색 책장과 책상으로 서재를 꾸며주었다. 모든 책을 다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책은 대부분 가지고 왔었다.
결혼한 지 이제 3년 정도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 방에 몇 번이나 제대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해 본 기억이 없다. 그저 책을 꽂아놓은 풍경이 필요했었나 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긴 지 6개월이 조금 지났다. 그래서 서재방을 아기방으로 꾸미자고 했고 서재방에 있던 물건은 창고처럼 쓰던 방에 정리해서 옮기기로 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흰색 책장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베란다에 수납용으로 내어두고 책장은 다시 사기로 했다. 아내는 빨리 정리하려면 책장부터 사자고 했다. 새로운 책장을 사는 일은 나도 좋은 일이지만 선뜻 그렇게 하자고 동의하지 못했다. 두루뭉술하게 '어 그래. 필요하면 사야지.' 정도로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예전에 서재는 꼭 있어야 한다고 우겨놓고 서재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새로운 책장을 다시 사자는 말에 쉽게 동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는(내가 전문 작가도 아니기에) 대단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하루키도 초기에는 부엌에서 소설을 썼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