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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Dec 02. 2022

두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 대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고양이를 소재로 한 단편집. 두 편의 단편으로만 엮인 책이다.


어슐러 K. 르 귄은 단편 제목이기도 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닐 게이먼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와 이 고양이들이 함의한 메시지와 상징을 근사하게 뒤튼다.


르 귄의 단편은 삶과 세계의 불확정성을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단 하나 분명한 건 기존의 물리법칙이 붕괴돼 어떤 일도 더는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세계라는 점.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 벌인 애처로운 시도조차 인물들을 더 큰 혼란 (혹은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어쩌면 나 또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열어보는 선택들을 해왔을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잠정적이고 유예된 가능성을 내 유일한 현실로 확정시키겠다는 목적만을 붙든 채, 자유의지를 주체적으로 실천한다는 오만한 환상 속에서.


하지만 삶 자체가 거대한 상자이고 내가 바로 그 고양이에 불과하다면?


그렇다고 삶이 신의 주사위놀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종교적 운명론을 따르고 싶지도 않다. 다만 선택과 결정, 결과를 맞이하고 해석하는 그간의 내 태도를 바꾸고 싶기는 하다.




르 귄의 단편이 독자를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념에 빠지게 하는 일종의 사고실험처럼 여겨진다면, 게이먼의 ‘대가’는 이야기의 재미에 충실한 단편이다. 그의 검은 고양이는 복수하는 고양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훌훌 벗어던지곤 주인공과 독자 모두 예상치 못한 초자연적 세계로 끌어들이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친다. 고양이가 아니라 주인공이, 인간의 이기심이.


어떤 소설은 모든 갈등이 봉합되고 사건이 해결되어 마침내 주인공이 종착지에 도달했는데도 마지막 문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 한걸음이 이야기 전체의 인상을 극적으로 바꾸기도 하며, 마지막에 새기는 용의 눈동자처럼 이야기를 완성하기도 한다. 게이먼의 다른 소설을 읽지 않는 이상 이 단편의 마지막 문장으로 그를 떠올릴 것 같다.


이 책은 역자 후기도 재밌게 읽었다.



1) 일종의 독후활동으로 게이먼과 르 귄이 각각 2014년 전미도서상 시상자와 수상자로 소감을 발표하는 유튭 영상을 봤다. 지난 50년간 소위 리얼리즘 작가들에게만 이 상을 수여해온 사실을 그녀가 감사 인사로 돌려 까고 문학을 상품화하는 출판업계를 (심지어 자신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까지) 신랄하게 질타하는데 그 와중에 사랑한다고 외치는 청중에게 “Well, I love you too, darling.” 껄껄 웃으며 호응해준다. 그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와 박력에 새삼 반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PI1xwT2-74


 2) <The Price - The Original Animatic>. ‘대가’를 원작으로 한 3D CG 애니메이션. 게이먼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영상도 유튭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zxFjfB8D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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