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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Dec 04. 2022

지난 계절의 일기

루시아 벌린, 청소부 매뉴얼



아이에게서 영화예매를 취소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세탁방의 대형 건조기에 두툼한 이불 두 채를 막 밀어넣던 참이었다. 아빠가 안경 두 개 모두 직장에 놓고 왔다 했다. 어떻게 소중한 눈을 놔두고 다닐 수 있지, 그것도 두 개나? 아이는 굉장히 황당해하는 눈치였는데, 그럴 수 있어. 우리 나이엔. 초점거리마다 다른 안경이 필요하며, 선글라스를 머리에 끼고 선글라스를 찾는 일이 벌어진다. 아, 이이가 퇴근길엔 선글라스를 껴서 안경을 잊었겠구나.


다가오는 여름이 두려워질 만큼 햇빛이 강렬하다. 티끌 같은 날벌레 하나가 얼굴 주변을 성가시게 날아다닌다. 통유리창 너머 한적한 골목가, 오후의 빛 속을 바람만이 한가하게 오가고. 길모퉁이에 놓인 붉은 캐리어. 버려진 낡은 캐리어를 보면 그 안을 꼭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속눈썹에 들러붙다시피한 날벌레에 정신을 차리곤 건조기에 동전을 넣었다. 마스크를 내리고 손끝을 코에 갖다 댔다. 종이 섬유유연제의 진한 단내에 진저리를 쳤다. 바지에 손을 문질렀다.


이로써 온가족이 대략 2년만에 극장에 갈 계획이 무산되었고... 나는 건조가 끝나는 시간을 눈여겨보곤 책을 펼쳐든다.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은 코로나시국에 접어들었을 무렵 읽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이 책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삶의 초기 궤적과 배경이 레이먼드 카버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어서였을까. 막상 읽어보니 문체며 스타일이며 많은 것이 달랐다. 벌린은 보다 자전적인 작품을 쓴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들은 점차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그녀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읽히기 시작한 건 사후의 일이라 했다. 


나는 주기적으로 이 책을 생각하곤 했다.  몇몇 장면들이 기억에 세게 박혀 있어, 특정 장소에서 여지없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세탁방에서. 


비눗물로 흥건한 리놀륨 바닥, 용기를 달라 간청하는 기도문과 아기를 사산해서  아기침대를 팔겠다는 광고문이 붙은 벽, 오래된 대합실에 있을 법한 노란 플라스틱 의자들, 거기 나란히 앉은 노인과 젊은 애엄마. 알콜 중독자인 아파치 인디언 노인은 목요일마다 세탁기 위의 거울로 ‘나’의 손을 지켜본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 캠퍼스 빨래방이 아니라 인디언들, 노인들, 십대 엄마들과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쇠락한 빨래방에서 기저귀를 빠는 ‘나’, 내 손에는 옅은 검버섯이 번졌고, 흉터가 두 개 나 있다. 목요일마다 만나는 또 다른 노인은 자신이 오지 않으면 죽은 줄 알고 시신을 거둬달라 부탁하는데 그녀는 월요일에 죽었다. 인디언 노인은 자신이 아파치족 족장이었다며 아침부터 술주정을 하고 나는 그와 맞담배를 피우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런 장면들이 어떤 날은 흐릿하게, 어떤 날은 지나치게 선명하게 다가와 분명 내가 덧칠했을 거라 의심한다.


무게가 나가는 이불빨래 때문에 겨울과 봄마다 찾아오는 이 세탁방은 공간 자체가 잘 세탁되어 완벽하게 건조, 표백까지 끝마친 것 같다. 벌린의 <에인젤 빨래방>의 어떤 외적 요소와도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세탁이라는 행위가 지닌 무언가가 여기서도 마음을 건드린다. 이렇게 꼼짝없이 붙들려 있다. 모든 과정이 끝날 때까지. 집안의 것을 집 밖으로 꺼내온 이들과 일인용 소파에 나란히 몸을 묻고서. 너른 탁자에 건조된 세탁물을 아무렇게나 쏟아놓는 무표정한 얼굴. 차곡차곡 빠르게 각이 잡혀가는 옷들. 건조기에서 세탁물을 꺼내 빨래바구니에 쑤셔놓고 자리를 뜨던 뒷모습. 색깔옷과 흰색옷들, 속옷과 양말을 한꺼번에 세탁기에 집어놓은 뒤 마사지 의자에 누워 휴대폰을 꺼내는 손놀림. 거품 속에서 모든 개인적인 사정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돌아가는 세탁기. 언젠가 나는 건조기에서 어린아이의 양말 한짝을 발견하곤 분실물함에 넣어뒀다. 뜬금없이 여자의 손을 떠올린 날도 있었다. 시간을 앞서간 손. 검버섯이 피고 흉터 두개가 새겨져 있다. 아이들과 남자들과 정원이 보이는 손. 그리고 그녀가 불안하고 외로운 자신의 손을 처음 의식한 순간. 그 손을 먼저 알아본 노인. 나는 아파치족의 족장이었다. 거듭 말하는 노인. 그 노인이 언제 사라졌는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끝난 이야기였다. 


내게도 내 손의 어떤 모습을 처음 의식한 순간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여름이 성큼 다가왔고, 나는 지난 계절의 이불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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