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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Nov 27. 2022

1인분 독서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늦은 점심으로 J가 불닭볶음면이 먹고 싶다 했다. 남편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 눈치라 면을 새로 볶기로 했다. 점심 생각이 없어서 두 사람 몫만 만들었다. 다진 파와 만두소를 올리브유로 볶다가 미리 반쯤 삶은 라면을 넣고 굴소스와 들기름을 휘리릭 둘러 대충대충. 불닭소스는 절반만 넣었다. 갈비양념에 재워둔 대패삼겹살을 따로 구워 볶은면에 올려줬다.


남편이 태국식 볶음 쌀국수 맛이 난다면서 이제껏 내가 만든 볶음면 중 가장 맛있다 했다. 맛도 보지 않고 대충 만들었는데... 파기름, 불닭소스, 굴소스 조합이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의도하지 않은 맛이라 어리둥절해졌다. 다음에는 양파와 숙주를 넣어야겠다. 마늘과 청량고추에 다진 돼지고기를 함께 볶아도 좋겠지. 아니면 새우를 넣거나. 불닭소스 대신에 고춧기름을 넣으면 되려나? 보탤 재료를 떠올리는데 이러다 망하지 싶기도...


정성 들인 만큼 맛이 보장되지 않는 슬픔은 만드는 자의 몫이라 먹는 자는 영영 모를 거다. 심혈을 기울였는데 맛없다 하면 당연히 허탈하고 기운이 쏙 빠지지만, 대충 만들었는데도 맛이 최고라 하니 그것도 뭔가 개운치 못하고 좀 씁쓸한데... 그 연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자는 요리솜씨가 없어서이고 후자는 요리솜씨 덕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요행과 MSG?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혼자 점심을 건너 뛰고 읽은 책. 그간 혼자 아점을 해치울 때마다 식탁 한 켠을 차지한 책이기도 하다. 그러라고 내준 책 같아 의도를 충실히 따랐으나 기대했던 혼밥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 혼자 점심 먹는 이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을 거라 착각했다. 배민의 이야기 프로젝트 '나의 다정한 식당'의 이석원 작가 편이 좋아서 그런 이야기를 은연중에 기대했던 것도 같다.


십여년 전 막내동생의 졸업 전시회에 맞춰 떠난 도쿄 여행에서 인상적이었던 점 하나는 도시가 1인분의 삶을 기준으로 짜여진 듯 보였다는 것이다.


동생이 살던 로프트 딸린 좁고 길쭉한 원룸, 엄마와 동생, 나와 어린 J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던 라면가게의 기다란 바 테이블, 슈퍼마켓에서 발견한 1/4 혹은 1/2로 쪼개진 식재료와 과일 들, 아침을 카페에서 해결하는 노인들, 그리고 도시락 도시락 도시락.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가 힘들어요, 혼자 고깃집 가서 삼겹살에 소주 까고 싶은데 눈치 보여요, 라는 고민이 퍽 흔하던 시절이었고, ‘김혜자 도시락’이 아직 나오기도 전이었다.


이제는 여기서도 혼밥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음식을 어떤 연유로 혼자 먹고 있는지, 홀로 점심 먹는 저마다의 사정을. '고독한 미식가' 같은 걸 기대하진 않았다. #코로나시국 #재택근무중 #유튭먹방혼밥 뭐 이런 게 어쩌면 흔하디 흔한 장면이고 빤한 사정일 수 있겠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드러나는 풍경이 전부는 아니니까... 뭐 그렇게 선택한 책이었다.


점심 시간에 맞춤한 짧고 재밌고 다채로운 산문들이 많았다. 산문 모음집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다양한 개성을 접할 수 있고 새로운 작가들을 알게 된다는 점일 거다. 이 책의 장점도 그걸 꼽고 싶지만 역시나 가장 마음에 든 건 제목과 기획.


그나저나 잃어버린 식욕은 어떻게 되찾지. 모든 영양소 공급을 알약 하나로 해결하고픈 나 같은 인간이 오늘은 내 정성으로 상찬을 받고야 말겠어, 팔을 걷어붙이곤 부엌을 휘젓게 하거나, 굳이 어딘가로 걸음하여 기꺼이 혼밥하고 싶게 하는 이야기가 더, 더 필요하다!


저녁은 추석연휴때 엄마가 주신 제주 보리빵과 우유로 가볍게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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