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위대한 20세기 러시아 단편 소설의 대가 이삭 바벨이 표현한 대로 우리는 이제 곧 “어떤 강철못도 적당한 자리에 찍힌 마침표만큼 차갑게 인간 심장을 꿰뚫을 수 없다”고 가정하는 영역에서 시간을 좀 보낼 참이다. 우리는 일곱 개의 꼼꼼하게 구축된 세계 축척 모형에 들어설 것인데, 이 모형은 우리 시대는 완전히 지지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가 살펴볼 작가들은 암묵적으로 예술의 목표라고 받아들였던 구체적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목적이란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가? 무엇을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가? 도대체 진실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조금이라도 평화를 느낄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결국 우리를 그들과 거칠게 떨어뜨려 놓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기뻐하며 살겠는가? (알잖나, 그 명랑한 러시아식 커다란 질문들.)" p 15-16
“그러나 아름답게 끝난 이야기의 특징은 우리가 인물의 삶이 이야기 너머까지 이어진다고 상상하게 된다는 점이다.” 98
“하지만 어떤 이야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이는 결론이 아니라 이야기를 읽는 과정에서 일어난 독자의 마음속 변화에 있다.” 100
“더 정직해지자. 우리 읽고 쓰는 사람은 읽고 쓰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읽고 쓰면 더 살아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읽고 쓰며, 그 전체적인 순수 효과가 제로라는 것을 누가 증명한다 해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크며, 나 자신은 그 전체적인 순수 효과가 마이너스라는 것을 누가 증명한다 해도 계속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그러니 완벽하게 정직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앞으로 나아가 진단하듯이 물어보자. 소설이 하는 일은 정확히 무엇인가?
자, 그것이 이 러시아 소설들을 읽는 우리의 마음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쭉 물었던 질문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읽기 전 상태를 읽은 후 상태와 비교했다. 바로 그게 소설이 하는 일이다. 소설은 마음의 상태에 점진적 변화를 일으킨다. 그거다. 알다시피, 정말 그렇게 한다. 그 변화는 한정적이지만 진짜다.
그리고 이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599-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