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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May 30. 2016

그와 그녀, 그리고 그들의 봄

김연수, 푸른 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2009년의 봄이라면 제일 먼저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지하1층 항암약물투여실 병상마다 짙은 갈색 차양봉투를 뒤집어쓴 항암제가 매달린 풍경이 떠오른다. 삼십대의 막이 내려가고 있던 그 시절, 나는 단테가 <지옥>편을 시작하면서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라고 노래할 때의, 바로 그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지옥으로 들어가며 단테는 그렇게 탄식했는데, 암센터 지하 1층 항암약물투여실의, 11이나 15 따위의 아크릴 팻말이 붙은 병상에 앉아 있으려니 그 말에 어찌나 동감이 가던지. 단테 덕분에 나는 그런 말들을 내뱉지 않을 수 있었다. 나보다 800년이나 앞서 살았던 단테의 그 탄식은 내가 겪은 이 고통이 어쩌면 모든 인류의 삶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 암센터 건물을 빠져나와 조금만 더 걸어가면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연세대학교 학생들로 북적이는 횡단보도가 나왔고, 거기 서 있노라면, 건강하고 젊은 그들에게 고통이란 다른 세상의 일들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젊고 건강했으나 지난 몇 년의 어느 순간에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면서 나는 고통의 측면에서는 800년 전의 옛사람과 같아졌다. 말하자면 나는 단테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겪은 개별적인 고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건 중언부언일 뿐이리라. 항암약물투여실 병상마다 앉거나 누워 있던 모든 암환자들의 고통이 그렇듯, 나의 고통 역시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었지만, 또한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 세상에 널린, 흔하디 흔한 고통이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코웃음을 치곤 했는데, 이제는 그 통속적 모순의 세계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2009년 4월, 그 노인이 내게 말을 걸 때까지 나는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지하 1층의 어느 그늘진 병상에 앉아서 '나는 단테다, 나는 단테다'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p159-160)

                                                  - 김연수의 단편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가운데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의 첫  


 

         창밖은 따사로워 보였다. 길 건너편에 넓게 펼쳐진 숲은 어제보다 더 푸른 빛을 띠고  있고,  너른 하늘이 한눈에 보였다. 하지만 시선을 지평선 멀리 던져보면 새벽 미명의 안개처럼 희뿌연 기운이 산을 뒤덮은 게 보였다. 산자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신도시는 희미한 실루엣으로만 존재를 드러냈다. 길 건너 숲을 경계로 그 너머에만 미세먼지가 껴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저쪽에서는 이쪽을 바라보며 상태가 심각하다고 혀를 찰지 몰랐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방을 들쳐메고 집을 나섰다. 

           벚꽃은 이미 졌다. 4월의 눈처럼 흩날리던 꽃잎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줄기마다 매달려 있던 자주색 꽃받침마저 우수수 떨어져 길은 봄의 잔해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지상 주차장 쪽으로 걷는데 저만치 잔디밭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슬쩍 몸을 돌렸다. 한손을 옆구리에 대고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은 자세로 여자는 담배를 피웠다. 뒷모습으로만 봐서는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것 같았다.   

         아파트 초입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다. 같은 라인에 사는 모녀였다. 붉게 한 무더기 핀 철쭉 앞에서 여자아이가 조막만한 손을 꽃받침처럼 얼굴에 받친 채 엄마를 보고 웃었다.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저런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이 엄마는 아이와 키를 맞추느라 허리를 깊이 숙이고서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앞서서 걷다가 갑자기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행렬을 지켜보거나 바람결에 실려온 작은 이파리를 두 손 뻗고 좇아다녔다. 그러다가 자신이 뒤쳐진 걸 발견하면 "같이 가요!" 엄마를 부르며 뛰어가곤 했다. 

         맞은편에서 다리가 0자로 휜 노인이 뒤뚱거리며 걸어왔다. 그녀는 복사뼈가 살짝 드러나는 검은색 고무밴딩 바지에 보라색 긴팔티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그녀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는 개가 그녀보다 더 뒤뚱거리고 있었다. 화려한 꽃무늬 조끼를 입은 개는 몇 발짝마다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그때마다 노인도 걸음을 멈춘 채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 한 초로의 사내가 아파트 상가 계단참에 앉아 두 팔을 무릎에 올려놓고서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어디선가 밤샘 작업이라도 한 것 마냥 후줄근한 옷차림에 까칠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휴대폰 액정을 보더니 입가에 깊은 주름을 새기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활기찬 목소리. "어이, 아들!"

 

         그는, 그녀는, 그들은 이 봄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칼 로저스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은 각자 현재 지각하고 경험하는 세계이며, 그렇게 지각된 현실들은 서로 다르다고 했다. 그러므로 "현실 세계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봄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모르겠다. 이곳은 이토록 화사하고 따뜻한데 조금만 더 멀리 바깥으로 시선을 던지면 흐릿하기만 하다. 이미 내 세계조차도 불안과 불의로 잠식당하고 있는데도, 지금 내 현실이 평온하다고 착각하며 그 불온한 기미를 애써 모른 척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고통을 피한다고 해서 그게 평화로운 세계 안에서 머문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는 곧 깨닫는다. 어느 날, 그는 “비쩍 마르고 키 작은 어린 삼나무들이 촘촘하게 식수된 공원길”에 누워서 자기 옆으로 지나가는, “매우 화목하게 보이는 일가족, 그러니까 젊은 부부와 어린 딸”을 바라보다가 부랑자꼴인 그를 보고 두려워하는 젊은 부인에게 남편이 “저 사람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거야. 그냥 없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은 그 화목한 가족이 사는 세계에서 지워지고 있었던 것이다.(p168)”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평온한 나날을 누리면서 나 또한 고통 받는 누군가를 내 현실세계에서 지워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봄은 더 이상 봄이 아니다.


          2014년의 봄을 떠올리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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