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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Oct 28. 2017

여기서

리처드 맥과이어, <여기서 HERE>

  동네에 유일하게 남은 초가집이 2층 양옥집으로 바뀐 뒤, 나는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초가집을 둘러쌌던 낮은 돌담과 집 뒤편의 키 큰 나무, 언젠가 돌담을 넘어 깨금발로 지나쳤던 그 집의 작은 마당을 떠올리곤 했다. 그것들이 있던 자리에는 아마도 80년대식 세간이 들어앉았을 터였다. 

  어린 시절의 일이다. 

  이제는 양옥집조차 사라져 매끈하게 길이 뚫렸고, 더 이상 무엇이 어디에 있었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리처드 맥과이어의 <여기서>는, ‘태초에 빛이 있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기원전 30억년부터 오래 전 멸종됐던 생명체만이 되돌아온 듯 보이는 22175년까지, 동일한 공간에서 장구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굉장히 독특한 컨셉의 그래픽 노블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집, 정확히 말하면 거실의 일부처럼 보인다.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한때 무슨 생각을 했고 누구와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으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작가는 다른 시간의 프레임들을 한 페이지에 겹쳐 놓고 보여준다. 그 각각의 장면들이 의미심장하게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사실상 길고 긴 시간을 관통하며 굵직하게 연결되는 서사라는 건 없다. 1986년 초인종의 소리에 개가 짖고, 1954년 암체어에 비스듬히 누운 누군가가 “매일같이 우체부가 오는데 개는 짖고 우체부는 항상 도망을 가. 개는 자기가 우리를 침입자로부터 보호했다고 생각하겠지.” 하고 혼잣말하는 식이지만, 그것이 어떤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게 생긴달까. 

  습지였던 곳에 숲이 우거지고 땅이 개간된다. 그 자리에 집이 세워지고 수차례 집안의 풍경이 바뀐다. 종내는 물에 잠겨 허물어지고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다. 훗날 비주얼 재현 프로그램을 통해서 예전의 모습이 잠시나마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들에도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이란 건 존재했다. 

  1957년 (아마도 작가인 듯한)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를 배경으로 1949년, 1924년, 1988년, 1945년의 엄마들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며, 1964년 소녀의 피아노 음악에 맞춰 1932, 1993, 2014의 소녀들이 거실 곳곳에서 춤을 추고 있다. 홀로 존재하는 듯했던 기원전 백만년의 달이 2015년의 창가에도 그 빛을 드리우고, 한 엄마가 품에 안은 아기에게 속삭인다. 

  “저게 달님이란다.”

  


  2017년. 봄이 가고, 여름이 갔다. 가을도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점점 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거머쥐고 싶긴 하나, 그 흘러감이 야속하고 아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계절과 되풀이되는 시간들, 많은 게 달라졌음에도 여전한 것들. 이를테면, 무섭도록 쏟아지던 비가 어느새 그치고 빛이 고여 있는 듯한 빗방울들이 나뭇가지마다 듣는 순간, 또는 하루치 밥과 기도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노모의 힘있는 잔소리와 간밤에 무서운 꿈을 꿨다며 가슴팍에 안겨오는 사춘기 아이의 달콤한 살냄새... '사소하지만 매일을 살아가는 데 크게 도움되는' 것들에 대해 안도하고 감사하게 된다.  

  결국 모든 게 사라지는 순간이 오고야 말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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